면전에서 점잖은 체하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기자 입력 2021. 9. 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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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쯤 전부터 캠핑에 푹 빠지고 말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안전한 자기 장비를 들고 사이트 간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어서 이렇다 할 걱정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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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 김사장의 요즘 소설 - 살인범 협박 시 주의사항

3년쯤 전부터 캠핑에 푹 빠지고 말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안전한 자기 장비를 들고 사이트 간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어서 이렇다 할 걱정은 하지 않았다. 가장 걱정이 되는 건 날씨였다. 한데 일기예보를 자주 들여다보면서 묘한 사실을 알게 됐다. 태풍이 올라올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대개의 날씨가 악천후로 표시된다는 점. ‘비가 온다니까 캠핑은 포기해야겠네’ 싶어서 예약을 취소했는데 막상 당일에 해가 쨍하게 뜨는 바람에 황당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맑은 날씨를 예보했다가 비가 내리면 항의가 빗발치므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두는 것이다.

작가 후지타 요시나가가 “미국에선 날씨 예보가 빗나가도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예보는 어디까지나 예보, 빗나갈 때도 있다. 만사태평한 미국인의 태도가 훨씬 건전하다”라고 쓴 까닭은 ‘살인범 협박 시 주의사항’에 등장하는 인물(=일본인)들의, 점잖은 체하지만 실은 야단스러운 이중적 모습을 꼬집고 싶어서였으리라. 태풍이 도쿄를 강타한 어느 밤, 호스티스로 일하는 케이코가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수상한 그림자를 목격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이 일하는 술집의 단골이었던 남자를 알아본 케이코가 신분을 숨기고 협박편지를 보내자 며칠 후 그에게서 약속한 돈이 도착한다. 이상한 것은 남자가 살인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돈을 보냈을까.

케이코가 남자를 협박한 이유는 그가 젠틀한 손님이어서다. 불쾌한 구석이 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괜찮은 사람이니 뒤탈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거 행각이 밝혀질까 두려워 돈을 보낸 남자가 케이코에게 연애감정을 품으면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한 사람은 2억 원이나 되는 돈을 뜯어냈고 한 사람은 살인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서로의 면전에서는 점잖은 체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인간은 무서운 존재구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예보가 빗나갈 때마다 죽자고 항의하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늘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 놓는 기상청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고 할까. 태풍 찬투의 북상으로 추석 당일은 전국에 강한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왔지만 나는 왠지 날이 좋아서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아니면 비 내리는 추석을 만끽하며 가족들이랑 빈대떡이나 부쳐 먹어야지.

김홍민 북스피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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