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엄마' 기자가 본 '다자녀 혜택'..이것이 실상
"오, 애국자네."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반응입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자라서 국가에 평생 납부할 세금을 생각하면 마냥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말입니다. 진짜 애국자는 나라에서 포상이라도 받지, 다자녀 가정은 '애국'을 했음에도 정부로부터 그에 준하는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 혜택이 있지 않냐고요? 네, 다자녀 혜택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 혜택이라는 걸 한 꺼풀 벗겨보면 외마디 비명이 절로 나옵니다. "엥? 이게 다야?"
지난 15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다자녀 지원 확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정부로서는 당연한 결정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명. 둘째·셋째아는커녕 첫째도 잘 낳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다자녀 기준을 올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지요.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셋째아 이상 출생아는 8.3%에 불과했습니다. 둘째아는 35.1%, 첫째아는 56.6%로 집계됐고요. 우리나라는 유럽 국가에 비해 3자녀 이상 비중이 약 10%가량 낮다고 합니다.
기존의 다자녀 정책 지원 대상이 점점 축소되다 보니 정부로선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건 잘했습니다, 잘했는데요.
세부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역시나' 하고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이게 바로 대한민국 정부지! 정부 정책에 대한 '찬사'냐고요? 아뇨, 정반대입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보겠습니다.
① 다자녀 국가장학금 확대
내년부터 기초·차상위 가구의 둘째 자녀도 '국가 장학금'으로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진 셋째 이상 대학생(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200% 이하로, 학자금 지원 8구간 이하)만 연간 450~52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원 대상을 넓힌 겁니다.
네, 좋은 정책입니다. 그런데 이 혜택을 받으려면 너무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저처럼 영유아를 둔 가정에겐 체감 지수가 너무 낮습니다. 하물며 이 혜택을 받자고 첫째아 가정이 둘째를 더 낳을까요? 혜택을 받기까지 무려 20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게다가 초저출생에 따른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요새 대학들도 입학 정원을 못 채우는 게 현실입니다. 20년 후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②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확대
가정으로 찾아와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아이돌보미'라고 하는데요, 정부에서 아이돌보미 이용요금을 일부 지원해주는 사업을 '아이돌봄서비스'라고 합니다. 부모들은 흔히 이모님 또는 여사님이라고 부르죠.
지금까지는 만 12세 이하 아동이 3명 이상이거나, 36개월 이하 영아가 2명 이상인 가구만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정부가 내년부터는 만 12세 이하 아동 2명 이상이거나 36개월 이하 영아 1명이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돌보미 비용을 전액 지원해주는 게 아닙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해주는 비용이 달라요. 시간제 종합형 서비스(미취학 아동)의 경우 30분당 이용요금이 6525원이라면, '가형' 정부지원금은 4267원, 본인부담금은 2258원인 반면 '다형'정부지원금은 753원, 본인부담금은 5772원입니다.
그래도 그 돈이 어딥니까. 애가 둘셋이나 되는 가정에선 한 푼이라도 아껴야죠. 그런데 말입니다.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대기가 너무 길어서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이돌봄서비스 순번을 기다리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푸념의 글이 적잖게 올라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아예 대기를 걸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헛된 희망을 품느니 민간에서 제공하는 인력 풀을 이용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단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은 서비스이기에 다자녀 혜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③ 2자녀 이상 다자녀 주거지원 강화
내년부터 통합공공임대주택의 다자녀 기준이 2자녀 이상으로 확대됩니다. 4인 가구가 선호하는 전용면적 60~85㎡ 중형주택을 새롭게 도입해서 다자녀 가구에 공급한다는데요. 60㎡면 약 18평인데 정말 4인 가구가 선호하는 거 맞나요?
아이가 영유아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 주기에 따라 독방을 내어줘야 하는 순간도 있을 텐데 그런 부분까지 감안하면 좋지 않았을까요?
저는 화장실이 한 칸인 20평대에 살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배변 훈련을 시작한 요즘 화장실 한번 가려면 줄을 서야 합니다. 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죠. 정책 입안자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60㎡의 인구밀도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내년부턴 2명 이상 다자녀 가구에게 한 단계 넓은 평형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매입 임대 보증금 및 전세 임대료도 인하해 주겠다는데요.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④ 고속열차 할인
올해 하반기부터 고속열차 2자녀 할인이 기존 KTX에서 SRT까지 확대됩니다. 등록 가족 중 3명 이상 이용할 경우 어른 운임의 30%를 할인해주는 건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혜택을 받고 싶어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첫째, 코로나19로 인해 친정 및 시댁에 가거나 여행 갈 일이 줄었습니다. 둘째, 영유아는 아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오랫동안 마스크를 끼고 있기가 힘듭니다. 부모가 애걸복걸하며 마스크를 씌워도 아이가 손으로 잡아 뜯어버리면 그만이죠. 그래서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게 됩니다.
⑤ 공항 주차장 할인
인천공항 등 전국 11개 공항 주차장을 이용할 때 50%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혜택 대상이 기존 3자녀 이상 다가구에서 2자녀 가구로 확대된 것이죠. 그런데 저는 한 번도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공항을 가본 적이 없고, 코로나 이전에는 공항철도를 이용했습니다.
⑥ 문화시설 이용 확대
올해 하반기부터 2자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문화시설이 기존 3곳에서 7곳으로확대됩니다. 기존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극장, 국립국악원에서만 20% 할인 혜택(기획전시, 자체공연)을 제공했는데,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극단, 예술의전당, 정동극장 등 4곳에서도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와, 신난다!" 좋은 소식입니다. 저도 문화시설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당장은 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한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영유아 자녀들이 만에 하나 전시물을 건들면요? 뛰어다니면요?
'만지지 마. 눈으로만 보는 거야. 뛰지 마.' 등등의 잔소리를 계속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문화시설은 그림의 떡입니다. 한두 해 지나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려나요.
⑦ 국립수목원 이용료 면제
올해 하반기부터 국립수목원 이용료 면제 대상이 3자녀 가구에서 2자녀 가구로 확대됩니다. 솔직히 3자녀 가구인 제가 혜택 대상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국립수목원을 검색해봤죠. 어른 이용료가 1천원이었습니다. '아…' 저도 모르게 내적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유아는 어차피 무료더군요.
다자녀 가정이 본 '다자녀 혜택'
자칫 제가 불만론자처럼 비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정부에서 다자녀 혜택을 주겠다는데도 왜 난리야?" 이렇게 물으시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다자녀 가정에 어마어마한 혜택을 주는 것처럼 생색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혜택 말고 다른 혜택들이 있긴 합니다. 3자녀 가정은 전기료와 도시가스 요금, 난방비 할인을 받습니다. 다 합하면 몇천 원 되겠네요. 커피 한두 잔 값이라도 벌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요?
매달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기저귀 값, 로션 값, 의복비, 식비 등등에 비하면 커피 한 잔 값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고로 저희 가정은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대상입니다.)
가끔은 의문스럽습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다자녀 혜택이 있는 건 아닐까? 나만 놓치고 있는 거 아닐까? 주변 다자녀 가정에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혜택이요? 안 받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있다! 경기시설 무료입장 뭐 이런 소소한 혜택을 누리긴 했네요." - 3자녀 엄마 A씨(40대)
혜택을 체감하는 가정도 분명 있기야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10만 원짜리 온누리상품권이 나오는데, 평소엔 생활비로 못 사 먹는 '샤인머스캣' 같은 거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 3자녀 엄마 B씨(30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다자녀 혜택이 좀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이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10가지 혜택을 내놓는다고 한들 이용할 여건이 안 된다면 말뿐인 정책 아닐까요?
애국하려고 다자녀를 낳은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모든 다자녀 부모는 애국자가 맞습니다. 국가에 세금 낼 노동자를 자기 돈 들여 양육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좀 더 획기적인 다자녀 정책을 기대해봅니다.
CBS노컷뉴스 김효은 기자 afric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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