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체스와 플라스틱 쓰레기

e뉴스팀 2021. 9.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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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인도에는 체스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예전에 인도의 암발라푸자 지방을 다스리던 왕이 있었다. 이 왕은 체스 두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이 지역을 지나던 현자가 왕에게 체스 게임을 청했다. 왕은 현자에게 게임에서 이기면 상으로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다. 현자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센 숫자만큼의 쌀을 달라고 했다. 현자가 말한 방식은 체스판의 첫 칸에 쌀 한 톨을 올리고, 둘째 칸에 그 두 배인 두 개를 올리는 식으로 체스판의 64개 칸을 매 칸마다 두 배씩 늘어나는 쌀알로 채워달라는 것이었다.

현자가 원하는 상이 소박하다고 생각한 왕은 현자의 제안에 동의하고 체스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은 현자의 승리로 끝났고 왕은 현자가 제안한 상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쌀 한 포대를 갖다 놓고 왕은 체스판 위에 쌀알을 올리기 시작했다. 8줄의 체스판을 채워가던 왕은 채 세 줄도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둘째 줄의 마지막 칸에서 이미 1kg의 쌀이 필요했고 세 번째 줄을 채우려면 600kg의 쌀이 필요했던 것이다.

놀란 왕은 수학자를 불러 체스판을 모두 채우려면 쌀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하게 했다. 수학자의 계산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체스판의 마지막 칸을 채우려면 2000억 톤의 쌀이 필요하고 이는 인도 대륙 전체를 1미터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었던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시점에 현자는 자신이 사실은 크리슈나 신임을 밝히고 왕에게 쌀은 시간을 두고 제물로 바쳐도 된다고 했다. 이에 왕은 암발라푸자 스리 크리슈나 사원을 짓고 사원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매일 쌀로 만든 푸딩인 파야 삼을 무료로 나눠주게 하였다고 한다.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 오염이 체스판 위의 쌀알처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20년에 두 배씩 증가하고, 바다로 흘러드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20년에 세 배, 바다에 쌓이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은 20년에 네 배씩 증가하고 있다. 엘렌 맥아더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 오염은 바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잘게 부서져 생기는 미세 플라스틱은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비나 눈에 섞여 내리게 되는데 그 양이 연간 수 천억 톤에 이르고 극지방과 같은 청정지역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급격히 증가하는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지극히 미온적이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제한하고 재활용을 장려하는 정도의 정책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총 생산량의 10%도 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금년 초부터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 포장재 쓰레기에 kg당 1,100원의 플라스틱 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음식물을 담은 플라스틱 포장재의 무게가 몇십 그램 정도여서 실질적인 세 부담은 상품당 몇십 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정도의 세금은 가격 조정으로 쉽게 소비자에게 떠넘길 수 있어 과연 플라스틱 세가 쓰레기를 줄이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도 금년 3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하면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나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등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반을 차지하는 포장 배달 음식 용기에 대한 규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 만으로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줄이기 어려울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플라스틱 생산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탄소 발생 총량의 목표치를 정하고 탄소 발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처럼 플라스틱 생산의 총량 목표를 정하고 플라스틱 제조단계에서 세금을 부과해야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체스판의 끝까지 쌀을 채우지 않고 세 번째 줄에서 수학자의 말을 들은 왕처럼 늦기 전에 플라스틱 쓰레기로 체스판을 채워가는 무모함을 멈춰야 할 때다.

e뉴스팀 (bod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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