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괴물이 아니다"

한소범 2021. 9. 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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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이재문 지음·김지인 그림  '몬스터 차일드'
이재문 지음ㆍ김지인 그림 '몬스터 차일드' 삽화. 사계절 제공

‘초글링’이라는 말이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유닛 ‘저글링’과 ‘초등학생’을 결합한 것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저글링’의 괴물 같은 모습이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멸칭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이재문 작가의 장편동화 ‘몬스터 차일드’는 작가가 어느 날 인터넷에서 본 “아이들이 괴물 같다”는 한 문장에서 탄생한 책이다. 기본적으론 어린이 독자를 타깃으로 두는 동화책이지만, “서투르다는 이유로, 어른들 말에 따르지 않고, 감정 조절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혐오해온 어른들이야말로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청소년 문학의 산실인 사계절 출판사가 새롭게 시작하는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주인공인 열두 살 하늬와 동생 산들은 뮤턴트 캔서로스 신드롬(Mutant Cancerous Syndrome; MCS), 우리말로는 ‘돌연변이종양 증후군’을 앓는 남매다.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사이에 발현되는 MCS의 공통된 증상은 발작을 일으킨 뒤 신체가 변이되는 것이다. 온몸이 털로 뒤덮이고, 날카로운 발톱과 어마어마한 힘이 생긴다. 어린아이를 괴물로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은 ‘몬스터 차일드 증후군(Monster Child Syndrome)'이라 부른다.

이재문 지음ㆍ김지인 그림 '몬스터 차일드' 삽화. 사계절 제공

이들 남매는 늘 억제제를 복용하며 증상이 발현되지 않도록 애쓰고, 발작을 일으켜 정체를 들킬 때마다 전학과 이사를 반복한다. 불시에 찾아오는 발작만큼이나 아이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다. “괴물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튀어나오는 날에는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하늬는 사회적 낙인을 내재화하고 점점 더 움츠러든다. 괴물인 모습을 드러내면 친구들과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서 모습을 꽁꽁 숨기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이야기는 하늬와 산들 남매가 숨겨진 MCS 치료 센터가 있다는 동네로 일곱 번째 전학을 가며 시작된다. 이곳에서 하늬는 정체를 숨기는 자신과 달리 자연스럽게 변이된 모습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MCS 연우를 만나게 된다. 하늬는 연우의 도움을 받아 난생처음 완전히 변이한 상태가 되고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여기에 MCS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나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MCS 자립 훈련소 소장님을 만나게 되면서 하늬는 차츰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몬스터 차일드'. 이재문 글ㆍ김지인 그림. 사계절 발행. 212쪽. 1만2,000원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농장이 괴물에게 공격받는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당연히 연우의 짓이라고 여긴다. 연우가 그랬을 리 없다고 믿는 하늬는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연우의 도움을 받아 ‘괴물’인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하늬가, 반대로 연우를 도우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괴물로 변한다는 소재는 ‘크리처물’의 전형이지만,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갈등은 전적으로 현실에 기반한다. MCS 치료 센터 앞에 붙은 “혐오 시설 건립으로 인한 집값 하락 보상하라”는 현수막은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건립을 둘러싼 발달장애인 부모와 지역 주민의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MCS의 털에 감염 물질이 있다는 인터넷 방송의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소설 바깥,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불시에 털복숭이가 되는 아이들을 향한 적대에서는 장애, 성별, 인종, 종교 등의 다양한 이유로 배제의 대상이 되는 무수한 존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이재문 작가는 인터넷에서 "아이들이 괴물 같아요"라는 문장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 사계절 제공

작가는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닌, 그것으로 충분한 하나의 ‘종(種)’”이라고 말한다. 어른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어린이라는 종’의 특성을, 그저 어른의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누릴 공간을 보장받겠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쫓는 ‘노키즈존’이 넘쳐나는 그런 나라에서라면, 아이들은 자연히 ‘멸종위기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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