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이상은 과연 옳았는가
2021. 9. 17. 03:05
SBS 특선 영화'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에는 두 가지 세계관이 공존한다. ‘자산어보’를 쓴 형 정약전(설경구)의 현실주의와 ‘목민심서’를 저술한 동생 정약용(류승룡)의 이상주의다. 이들 형제는 천주교 박해로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서도 저술 작업에 몰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들 형제의 세계관은 조선 후기의 부패상 속에서 서서히 충돌과 균열을 일으킨다. 정약용의 이상주의에는 조선의 체제 개혁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믿음이 깃들어 있다.
반면 정약전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이면에는 조선 사회에 대한 근본적 절망과 변혁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는 것이 영화의 독특한 설정이다. “질문이 곧 공부다.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는 정약전의 일갈(一喝)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역사극이지만 현실 사회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왕의 남자’로 105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준익 감독의 연출작. 감독은 전작 ‘동주’에 이어 다시 화려한 색채를 배제한 채 흑백 영화를 고집했다.
‘박열’에서 독립 정신, ‘동주’에서 시심(詩心)을 스크린에 담았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앎의 유용함과 무용함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는다. 독립 정신과 시심, 지식까지 보이지 않는 추상적 주제를 시각화하려는 감독의 꼬장꼬장한 고집에서 역설적으로 치열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22일 밤 10시 1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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