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팔겠니".. 올해 세계 M&A 4500조원 돌파

최규민 기자 2021. 9.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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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최대 M&A붐, 스타트업 싹쓸이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여름휴가철인 8월은 전통적 비수기로 꼽힌다. 하지만 올해는 예외였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잭 도시가 창업한 온라인 결제 업체 스퀘어가 호주의 후불 결제 업체 애프터페이를 290억달러(약 34조원)에 인수한다는 발표를 시작으로 미국 리츠회사 VICI의 MGM그로스프로퍼티스 인수(172억달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루멘(통신회사) 사업부 인수(75억달러), 세계 최대 농산물 회사 카길의 샌더슨 팜스 인수(45억달러) 등 대형 M&A 발표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9월에도 세계 최대 간편 결제 업체 페이팔이 일본의 후불 결제 스타트업 페이디를 27억달러에, 빌 게이츠가 이끄는 캐스케이드 인베스트먼트가 포시즌스호텔 지분을 22억달러에 매입하는 등 잇따라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 작년에 얼어붙었던 글로벌 M&A 시장이 올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거래 규모가 사상 최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래픽=김의균

◇넘치는 돈, 급변한 환경이 M&A 부추겨

금융정보 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전 세계에서 체결된 M&A 계약 규모는 3조900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달했다. 2019년 2조6000억달러보다 50%가량 증가했다. 이런 추세면 M&A 거래 규모가 사상 최대였던 2007년(4조3000억달러)을 넘어설 것이 확실하다. 한국에서도 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와 SSD 부문을 10조원에 인수하는 등 올해 상반기 221조원 규모의 M&A가 이뤄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늘었다.

M&A 붐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된 상황에서,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쉬워지고 기업 이익이 늘면서 돈이 넘쳐나는 게 가장 직접적 원인이다. 주식시장 호황이 이어지면서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한 우회 상장을 노린 인수·합병도 활발해졌다. 동남아 차량 호출 시장을 석권하며 396억달러(약 46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그랩이 스팩을 통해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스팩을 통한 기업공개(IPO)는 지난해 1분기 38억달러에서 올해 1분기 914억달러로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로 촉발된 기업 환경 변화에 떠밀려 M&A에 나서기도 한다. 코로나로 항공 산업이 타격을 받자, GE는 항공기리스 사업 부문을 경쟁사인 아일랜드의 에어캡에 매각했다. AT&T는 3년 전 인수한 워너미디어를 다시 분할해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와 합병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에너지 전환, 사이버 보안 등이 화두로 떠오르며 혁신적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가진 테크 기업 인수 열기도 더 뜨거워졌다. 기업용 클라우드 업체 세일즈포스는 기업용 메신저 슬랙을 277억달러에 인수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대화형 AI(인공지능) 설루션 업체 뉘앙스 커뮤니케이션을 197억 달러에 사들였다. 팬데믹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은 원격 고객 상담 서비스 플랫폼 업체 파이브나인을 인수하는 데 150억달러를 썼다. 코로나 이후 콜센터 운영 방식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자사 시가총액의 16%에 해당하는 인수 금액을 베팅한 것이다.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지난 4월 상원 인사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FTC는 페이스북이 경쟁사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왔다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AFP연합

◇M&A 호황 지속…독과점 우려 높아져

투자자의 입김이 강해진 것도 M&A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기업이 더 빠른 성장 루트를 찾으라는 압박에 자체적으로 신사업을 키우는 대신 M&A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M&A 호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회계 컨설팅 업체 KPMG가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400여 명을 설문조사해 보니 “M&A에 관심이 매우 높으며,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거래를 3년 내에 진행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49%에 달했다. “M&A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며, 적당한 규모의 M&A를 추진하겠다”는 CEO도 37%였다.

글로벌 로펌인 설리번 앤드 크롬웰의 프랭크 아킬라 글로벌 M&A 대표는 “대부분 기업이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 있으며, 자금 조달 비용도 싸고 주가도 높아 향후 12개월간 M&A 속도가 느려질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더크 앨버스마이어 JP모건 글로벌 M&A 공동대표는 “기업의 가치 창출 과정에서 M&A가 중요한 대목으로 자리 잡았다”며 “많은 기업이 계산된 리스크를 기꺼이 감당하면서 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M&A를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막대한 현금력으로 무장한 대기업이 유망한 스타트업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시장 경쟁을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커진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페이스북이 독점적 시장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 업체나 신생 기업을 ‘사들이거나 묻어버리는(buy or bury)’ 전략을 사용했다”며 반(反)독점 소송을 진행 중이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4억달러를 주고 사들인 ‘움짤(짤막한 동영상)’ 전문 회사 기피(Giphy) 인수 건도 도마에 올라있다. 인수 전 대규모 배당을 해 자산 규모를 축소하는 ‘꼼수’로 감독 당국의 규제를 피했다는 의혹이다.

이 때문에 향후 M&A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돼 글로벌 M&A 시장에 암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경쟁을 촉진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비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새 가이드라인은 테크·헬스케어 업종을 주로 겨냥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 거래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도 영국과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좌초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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