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코로나 기득권’ 올라탄 사람들
서민들 고통 속 아우성쳤지만 위기가 현 정권 무능 가려줘
팬데믹 또 와도 ‘K방역’ 자랑할까
코로나 사태가 갓 발발한 지난해 1월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 건 신간 ‘셧다운(Shutdown)’을 읽으면서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코로나 위기를 공식 인정한 작년 1월 20일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 1월 20일까지, 만 1년간 세계 각국이 벌인 코로나와의 전쟁을 담은 ‘연대기’랄 수 있는 책이다. 유럽연구소장을 지낸 저자 애덤 투즈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책에서 바이러스라는 전 지구적인 도전에 직면한 각국이 동시에 위기 대응 실력을 겨룬 그 1년을 ‘올림픽’에 비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틈만 나면 ‘K방역’을 자랑해온 한국은 이 생존 올림픽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한국은 총 36번 언급됐고, ‘진단 키트를 조기 보급해 감염자 추적에 나섬으로써 초기 감염 확산을 억제했다’는 긍정적인 대목도 눈에 띈다. 하지만 코로나 올림픽 예선에서 선전하던 한국은 본선 격인 ‘백신 레이스’ 이후 대목에선 책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다. 지금도 진행 중인 코로나 올림픽에선 예선에서 충격적인 꼴찌였던 미국과 영국이 ‘마스크 없는 일상’을 향해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는 걸 우리는 다 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투즈는 이 책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코로나 국면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낸 20여국 지도자들을 등장시켰지만 ‘K방역 수장’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두의 질문을 떠올린 건 지도자들의 좌충우돌을 보면서였다. ‘1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세계는 팬데믹(대유행)을 억제해 바이러스가 앗아간 455만명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비현실적인 질문이지만, 그 답을 생각하다 보면 지난 1년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이 덮친 2020년 미국 전체 가계의 순자산은 무려 15조달러가 늘었다. 자산 증가의 혜택은 미 상위 1% 혹은 상위 10% 부유층에 집중됐다. 이른바 ‘K자형’ 양극화다. 코로나 1년은 그들에게 되돌리기 싫은 경제적 기득권을 안김 셈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어게인 2020’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어떨까. 자영업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고 2386명이 숨지는 걸 목격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코로나와 더 단호하게 맞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해법은 백신밖에 없다’고 나설까. 코로나 위기가 모든 것을 압도한 지난 1년은 이 정권엔 악재라기보다는 호재였다.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은 코로나에 가려진 측면이 크다. 부동산 가격은 뛰고, 기업들은 급속히 활력을 잃던 작년 초, 총선을 앞둔 여당 내에선 패배를 전망하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는 건 당시 정치권에서 공공연한 얘기였다. 그걸 반전시킨 게 코로나였다. 여당은 입법 독재 가능한 180개 의석을 얻었고, 코로나 양극화 와중에 경제활동이 활발한 3040의 자산 가격은 뛰었다. 이들은 정권 말로는 이례적인 대통령 지지율 40%를 떠받치는 핵심이다.
‘셧다운’을 읽으면서, 압도적 의석과 현재의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코로나 기득권’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되돌린다한들 백신 개발 확보를 명령하고, 중국과 맞서는 단호한 리더십을 대통령에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유기도 하다. 서민의 고통과는 거리가 먼 유체이탈식 ‘세계에 내놓을 K방역’ 자랑,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마치 선물을 주는 듯 흐뭇해하던 대통령의 언행들은 그의 성정이나 무감각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는 ‘코로나 거품’과 ‘양극화’가 악화된 지난 1년은 정치적으론 누군가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해준 1년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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