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문화공간에서 만난 최만린과 이육사[이즈미의 한국 블로그]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2021. 9. 17. 03:03
강의가 없는 금요일, 나는 가을바람에 이끌려 집을 나서 동네 작은 문화공간을 찾아간다. 비라도 내린다면 콸콸 쏟아지는 정릉천변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물길을 따라 북한산 입구에 다다르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계곡 바람에 흐르던 땀을 말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걸어 찾아가는 곳들이 있다.
‘최만린 미술관’은 집에서 걸어 20분 거리에 있다. 이곳은 조각가 최만린 선생님(1935∼2020)이 30년간 살며 작업하신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성북구립 미술관이다. 지난주 그의 1주기 추모전 ‘조각가의 정원, 다섯 계절’이 시작됐다. 그는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했고, 한국 조각 근대화의 토대를 이룬 거장이다.
나는 선생님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2018년 여름, 동네 도서관 특강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에 대해 배우던 중 수강생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선생님 댁이었다.
선생님은 당시 거주하시던 그곳을 미술관으로 바꾸기 위해 정리 중이었다. 우리에게 직접 정릉에 살게 된 연유와 집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특이한 억양으로, 하지만 청명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줬다. 또박또박 간결하게, 외국인인 나도 잘 알아듣게 말씀해주시는 모습에 옛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생각났다. 동시에 과거 전시에서 숨죽여 봤던 작품 ‘아(雅)’의 작가를 바로 눈앞에서 만났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이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이후로도 나는 선생님을 두 차례 더 만났다. 그 정직하고 꾸밈없는 모습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며 작품과 예술가의 삶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 여러 존경할 만한 분들을 만났지만 선생님은 지금도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예술가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시는 선생님의 생전 작품 세계를 사계절로 나눠 실내 전시장에서 소개하고, 정원을 오마주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실내 전시장을 둘러본 후 작은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마당 끝에서 오래 키우셨다는 커다란 금붕어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모습의 기억이 선하다. 선생님이 떠나신 뒤 그 물고기들을 정릉천에 방생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정릉천변을 걷고, 선생님 댁 금붕어를 찾는다.
최만린 미술관이 작가와의 인연 때문에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라면, 인근의 또 다른 복합문화시설인 ‘문화공간 이육사’는 내게 이육사 시인(1904∼1944)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준 곳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시인의 성함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의 대표 시 ‘청포도’와 ‘광야’도 몰랐고, 윤동주 한용운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저항시인’으로 꼽힌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시인의 외손자가 내 남편의 동창이라는 얘기를 듣고 또다시 놀랐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지만 이런 무지함을 자각하게 될 때마다 내 마음은 콩알처럼 작아진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이런 문화공간이 가까이에 있어 행복하다. 일제강점기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이육사 시인은 1939년 종암동 62번지에 이사해 몇 년을 지내며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시를 발표했다. 문화공간 이육사는 시인의 실제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의미 있는 공간이다. 8월 한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이육사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됐고, 지난주부터 시인과 관련한 문학 특별강좌를 수강하며 공부 중이다. 시인은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해 일본어로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시인의 시를 공부하는 것은 나를 더 성장시켜준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여행을 가지 못해 아쉬워한다. 하지만 최만린 미술관이나 이육사 문화공간처럼 우리 주변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문화예술 공간들이 있다. 올가을 이런 공간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많은 이들이 가까이에 있지만 몰랐던 인물과 작품을 만나고 그를 통해 기쁨과 치유의 감정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최만린 미술관’은 집에서 걸어 20분 거리에 있다. 이곳은 조각가 최만린 선생님(1935∼2020)이 30년간 살며 작업하신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성북구립 미술관이다. 지난주 그의 1주기 추모전 ‘조각가의 정원, 다섯 계절’이 시작됐다. 그는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했고, 한국 조각 근대화의 토대를 이룬 거장이다.
나는 선생님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2018년 여름, 동네 도서관 특강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에 대해 배우던 중 수강생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선생님 댁이었다.
선생님은 당시 거주하시던 그곳을 미술관으로 바꾸기 위해 정리 중이었다. 우리에게 직접 정릉에 살게 된 연유와 집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특이한 억양으로, 하지만 청명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줬다. 또박또박 간결하게, 외국인인 나도 잘 알아듣게 말씀해주시는 모습에 옛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생각났다. 동시에 과거 전시에서 숨죽여 봤던 작품 ‘아(雅)’의 작가를 바로 눈앞에서 만났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이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이후로도 나는 선생님을 두 차례 더 만났다. 그 정직하고 꾸밈없는 모습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며 작품과 예술가의 삶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 여러 존경할 만한 분들을 만났지만 선생님은 지금도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예술가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시는 선생님의 생전 작품 세계를 사계절로 나눠 실내 전시장에서 소개하고, 정원을 오마주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실내 전시장을 둘러본 후 작은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마당 끝에서 오래 키우셨다는 커다란 금붕어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모습의 기억이 선하다. 선생님이 떠나신 뒤 그 물고기들을 정릉천에 방생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정릉천변을 걷고, 선생님 댁 금붕어를 찾는다.
최만린 미술관이 작가와의 인연 때문에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라면, 인근의 또 다른 복합문화시설인 ‘문화공간 이육사’는 내게 이육사 시인(1904∼1944)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준 곳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시인의 성함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의 대표 시 ‘청포도’와 ‘광야’도 몰랐고, 윤동주 한용운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저항시인’으로 꼽힌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시인의 외손자가 내 남편의 동창이라는 얘기를 듣고 또다시 놀랐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지만 이런 무지함을 자각하게 될 때마다 내 마음은 콩알처럼 작아진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이런 문화공간이 가까이에 있어 행복하다. 일제강점기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이육사 시인은 1939년 종암동 62번지에 이사해 몇 년을 지내며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시를 발표했다. 문화공간 이육사는 시인의 실제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의미 있는 공간이다. 8월 한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이육사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됐고, 지난주부터 시인과 관련한 문학 특별강좌를 수강하며 공부 중이다. 시인은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해 일본어로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시인의 시를 공부하는 것은 나를 더 성장시켜준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여행을 가지 못해 아쉬워한다. 하지만 최만린 미술관이나 이육사 문화공간처럼 우리 주변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문화예술 공간들이 있다. 올가을 이런 공간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많은 이들이 가까이에 있지만 몰랐던 인물과 작품을 만나고 그를 통해 기쁨과 치유의 감정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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