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경험 없으니 탈락입니다" AI 면접관의 황당한 실수

김지섭 기자 2021. 9.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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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시장 'AI 필터링' 확산

“당신은 ‘고객 서비스’ 경력이 없어 송전선 수리 업무에 부적합합니다” “‘바닥 청소’ 경험이 없어서 매장 판매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습니다.”

채용 거절 이유치고는 황당하게 들리지만, 요즘 전 세계 채용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서류 전형에서 AI(인공지능)를 활용, 부적합 지원자를 자동으로 필터링(걸러내기)하는 일이 크게 늘면서다. 이 ‘거름망’이 너무 촘촘한 나머지 이해하기 어려운 탈락 사례들이 쏟아진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에 따르면 과도한 AI필터링으로 채용 고려 대상에서 배제된 이들(hidden workers)이 미국에서만 2700만명에 달한다. 조셉 풀러 HBS 수석연구원은 “병원에서 환자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간호사를 구하는데, AI가 ‘컴퓨터 프로그래밍’ 지식이 있는 지원자를 물색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일러스트=김영석

◇짙어지는 ‘채용 자동화’의 그늘

국내에서는 이른바 자소서(자기소개서) 채점에 AI가 활용된다고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 구직용 이력서나 입사 지원서 전체를 아예 AI가 살펴보고, 면접 대상자를 추려내고 있는 것이다. HBS에 따르면 미국 포천지(誌) 선정 500대 기업의 99%가 채용 과정에 ‘인재 선별 소프트웨어’를 적용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경우, 이력서를 분석해 지원자를 최적의 부서와 연결할 수 있는 자체 도구를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적성에 근거해 고용주에게 구직자의 순위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 구인구직 매칭 서비스 ‘사람인’도 MS와 비슷한 인재 채용 설루션 ‘머스트(MUST)’를 운영하고 있다. 자기소개서(자소서) 기재 내용, 인적성 검사 결과, 자격증, 업무 경험들을 분석하는 AI 알고리즘이 지원자를 스크리닝해서 기업에 적합 인재를 추천해 준다.

국내 채용·구직 서비스 기업인 인크루트, 마이다스인 등도 인재 채용을 위한 분석 시스템을 개발해 국내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LG전자, LS그룹, KB금융, 현대백화점 등 700여 개가 이러한 ‘AI 분석툴’을 채용 과정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자가 다른 사람의 자소서를 베꼈는지를 가려내거나, 화상 면접 시 지원자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와 억양, 답변 내용 등을 분석하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구인구직 매칭 서비스 업체 사람인이 기업에 판매하는 인재 채용 솔루션 ‘MUST(머스트)’의 서비스 화면. 지원자 모집과 관리, 서류 평가, 합격자 발표 등 채용 전 과정을 AI(인공지능)으로 간편하게 만들어 준다. /사람인

채용 과정에 IT(정보기술)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라인 입사 지원이 본격화하며 지원자 수가 급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서류 검토 시간을 줄이고, 자의적 평가 가능성도 낮추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정연우 팀장은 “2000년대 초반에는 지원자의 성별·연령을 구분하거나 자격 요건 미달 여부 등을 걸러내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자동으로 ‘적합 지원자’를 추출해내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은 과도한 필터링

채용 과정에 AI가 폭넓게 쓰이면서 효율성과 편의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채용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지면서 AI가 과도한 ‘필터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컴퓨터 업무에도 능숙한 간호사’를 뽑으려고 했더니, AI가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는 지원자만 추천하려 한 것, 또 ‘친절한 수리 기사’를 뽑으려 했더니 ‘고객 서비스’ 업무를 경험한 기술자만 추천하는 사례 등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직무 관련 설명(job description)이 길고 복잡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하게 걸러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빅데이터에 기반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다. HBS 연구에 따르면 AI는 방대한 과거 데이터(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인재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퇴역 군인, 워킹맘, 이민자, 대학 학위 미소지자 등이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백인 남성, 고학력자, 전문직 중심의 채용이 이뤄지면서 이들의 인사 기록이 빅데이터로 남아 AI의 판단 알고리즘에 영향을 미치고, AI가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유능하지 않다’고 간주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기업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HBS가 설문을 해보니 기업 임원 90%가량은 “(AI 채용 필터링이) 인재를 놓칠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마존과 IBM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이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되레 IT 기술에 의존하는 비중을 낮추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AI 기반 채용 보조 시스템 개발 업체 아웃매치의 그레그 모란 CEO(최고경영자)는 “이력서에 관련 지식, 기술, 경험에 대해 쓸 때 채용 공고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키워드를 포함해야 한다”며 “‘매출을 크게 증가시킨 팀’이라는 표현보다는 ‘2년 동안 매출을 40% 증가시킨 5명으로 구성된 팀’이라는 식의 구체적 표현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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