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핫한' 재활용품 수거 이면
[경향신문]
요즘은 좀 뜸하지만 동네마다 생선이나 채소 등을 파는 트럭이 있다. 그 트럭에서는 녹음된 음성이 반복되는데, 요지는 “산지에서 직접 가져와 싸고 맛있는 ○○○이 왔어요”다. 예전엔 늦잠 자던 내 귓속을 후볐지만 지금은 잠옷 바람으로 트럭을 쫓아가 어디서 녹음했는지 묻고 싶다.
나는 포장 없이 알맹이만 리필하는 작은 상점을 운영한다. 쓰레기가 안 나온다고 ‘제로 웨이스트’ 가게라고도 하고, 소분한다 해서 ‘리필 스테이션’으로도 불린다. 이렇게 포장 쓰레기를 줄이는 가게는 전국적으로 100곳이 넘는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물건만 팔지 않고 쓰레기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회수 거점 역할도 한다. 쓰레기발 동네 사랑방인 셈인데 손님들이 스테인리스 빨대 사러 온 김에 쓰레기도 가져와 회생시키는 방식이다. 재활용에 손은 많이 가지만 돈은 안 되는 작은 플라스틱들, 종이랑 섞이면 재활용이 안 되는 종이팩,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 커피가루와 쓰다 만 크레파스 등이 모인다. 해당 업체에 보내면 병뚜껑은 치약짜개와 같은 생활용품이, 종이팩은 화장지가, 커피가루는 커피화분이, 크레파스는 새 크레파스가 된다. 우리 가게는 한 달에 250~300㎏의 쓰레기를 7곳으로 보낸다.
하지만 쉽게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병뚜껑 안에 고무패킹 있으면 안 되고요. 색깔별로 분류하시고요. 커피가루는 곰팡이 피지 않게 말리고요. 종이팩에 달린 뚜껑 떼시고요.” 같은 말을 100번씩 하다 보면 앞에 든 트럭처럼 녹음된 음성을 틀고 싶다. 그것도 잠시. 쓰레기를 바리바리 싸온 동지들을 보면 신내림 받은 듯 다시 입이 트인다. 그런데 얼마 전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하소연이 올라왔다. “취지와는 다르게 플라스틱에 담긴 음료 소비를 독려하는 듯한 죄책감이 듭니다.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모아 와요.”
이들은 보통 10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을 할애해 쓰레기를 수거하고,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영업이 끝난 후 쓰레기를 싸서 자비로 택배를 보낸다. 급기야 쓰레기 기부라는 명목 아래 면죄부를 발급한 것은 아닌지, 윤동주 시인처럼 섬세하게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 가게들은 유제품이나 병에 담긴 음료 등 종이팩이나 병뚜껑 등 쓰레기가 발생하는 제품을 팔지도 않는다.
쓰레기를 살려내려는 마음과 손길에 감사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기업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 참여한다. 한데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한 가지 질문이 녹음 테이프처럼 반복된다. 정작 쓰레기를 만들어 돈을 번 기업들은 어디에 있고,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는 이대로 충분한가.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슈퍼맨을 분석하면서 “선은 사적 소유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오로지 자선으로만 표상된다”고 비판했다. 시혜와 자선이 아니라 가난의 원인을 묻는 것이 선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쓰레기 수거가 아니라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제품을 설계하거나 발생한 쓰레기를 해당 기업이 책임지는 것이 선이다. 나는 우리의 선한 의도가 조금은 뾰족해지길 원한다. 그리하여 병뚜껑, 페트병, 아이스팩 모으기가 기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분리배출을 잘해서 집 앞에 내놓으면 재활용된다고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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