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감기약과 치매
얼마 전 종영한 TV 연속극 ‘펜트하우스’에 치매 유발 약이 등장했다. 딸 하은별이 엄마 천서진에게 조기 치매에 걸리는 약을 준 것이다. 극중 천서진은 결국 약을 먹지 않고 치매인 척한 것으로 판명됐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생긴다. 치매 유발 약이 정말 있을까?
아직까지 치매를 직접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진 약은 없다. 하지만 주의가 필요한 약은 있다. 예를 들어 신경안정제를 오래 복용하면 치매 위험이 커진다. 인과관계인지 단순한 상관관계인지는 불분명하다. 치매 초기 증상 때문에 쓰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약 때문에 치매 위험이 커지는 것인가도 논란이다. 위산 분비를 강력하게 억제하여 위 식도 역류 질환 치료에 쓰는 약(PPI)을 오래 복용하는 경우에도 치매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역시 인과관계가 입증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론상 이 약을 오래 복용하면 신경세포 유지에 필요한 비타민B12가 부족해져 치매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불필요한 장기 복용은 피하는 게 좋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약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대체로 약이 기억에 미치는 부작용은 복용 뒤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다. 과음 뒤 필름이 끊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과도한 음주도 치매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점은 짚고 가자.
일상에서 노년층에게 위험한 약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감기약이다. 감기약 복용 뒤에 일시적으로 치매 유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날짜나 장소를 헷갈리거나 주의력, 언어력이 떨어진다. 심지어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감기약 속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 때문이다. 뇌에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신경 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감기약 속 항히스타민제가 방해하여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귀 뒤에 붙이는 멀미약, 일부 항우울제나 요실금, 배뇨 장애에 쓰는 항콜린제에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매일같이 감기 물약을 사러 오는 이가 눈에 띈다. 절대 뇌 건강에 좋다고 볼 수 없다. 약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만 써야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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