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아요" [슬기로운 기자생활]

선담은 입력 2021. 9. 16. 21:06 수정 2022. 8. 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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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슬기로운 기자생활] 선담은|산업팀 기자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기자들은 정의감 넘치고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24시간 일에 매달린다. 또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기자 지망생 시절엔 그런 모습이 좀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진짜 기자’가 된 지금은 “저렇게 일하면 과로사할 거야”라거나 “기자가 자의식 과잉인데?”라며 심드렁할 뿐이다. ‘지속 가능한 기자생활’을 위해선 직업인으로서의 ‘부캐’(부캐릭터)와 생활인으로서의 ‘본캐’(본캐릭터)를 적절히 구분해 사는 게 이롭다고 믿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업무와 무관한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들에겐 내 직업을 굳이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골 술집과 카페의 사장님, 일주일에 두번 만나는 운동 선생님, 7년째 다니는 치과 원장님 같은 사람들한테 말이다.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얘기했을 때 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나 기대, 평가가 소소한 관계들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다. 나는 그들에게 평범한 이웃 혹은 상냥한 손님으로 남고 싶은데, 상대방은 나를 기자라는 직업인으로 대하는 게 어쩐지 불편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남자친구의 회사 동료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탄 적이 있다. 내 직업을 듣곤 “센 직업”이라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한적한 사거리에서 신호 위반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자님 앞이라 신호 위반을 못 하겠어요. 이런 것도 기사로 쓰시나요?” 어쩌면 그는 지나가는 농담으로 그런 말을 던졌던 것일 수도 있지만,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그 일은 내 입장에서 기삿거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기자들도 무단횡단 해요”라며 웃어넘겼지만, 내 직업을 괜히 얘기했나 싶어 좀 후회가 됐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내 존재가 불편한 ‘감시자’로 여겨지는 상황이 좀 서글프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럴 땐 내 얼굴에 “해치지 않아요” 같은 문구를 써 붙여야 하나 싶다.

학생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다닌 미용실을 옮겨야 하나 고민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이곳에서 ‘별말이 없는 단골손님’이었던 내 직업이 알려진 건 3년 전 겨울에 썼던 기사 때문이었다. 청담동 미용실에서 일하는 20대 청년들의 노동 실태를 다룬 기획이었는데, 이 보도가 미용업계 종사자들에게 알려지면서 담당 디자이너 선생님도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미용실에 갈 때면, 사람들은 “조국(전 법무부 장관)은 좋은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지금이야 법원의 판단이 나오고 있지만, 서초동 집회가 한창이던 2년 전 가을엔 “저도 잘 몰라요”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그땐 정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미용실 선생님은 여전히 내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는 거라고 아쉬워하는 눈치다. 정말이지 뭘 아는 게 없는데 말이다.

가끔은 이런 일들이 취재를 하면서 부득이 누군가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고, 종종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업보는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또 한편으론 뉴스를 소비하는 시민들에게 기자란 직업이 자신의 주변에 해를 끼치거나, 가십성 정보를 생산해 나르는 사람으로만 비치거나 묘사되는 건 아닌가 싶어 답답한 마음도 든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던 세일러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내가 이 사회의 요괴인간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내 고민과 바람은 어떻게 하면 기자라는 부캐가 ‘자연인 선담은’의 일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거다. 다른 사람도 기자인 나를 불편해하지 않고, 나도 상대의 반응에 위축되지 않을 방법 말이다. 슬기롭게 이 고민을 해결한 분들의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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