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미사일 발사 이후의 대북협상

한겨레 입력 2021. 9. 16. 21:06 수정 2021. 9. 1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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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김종대|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전쟁학자인 피터 싱어의 책 <하이테크 전쟁>에 나오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이라크 전쟁 중에 미군의 한 전투원이 후퇴하다가 로봇 장비를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전투원은 목숨을 걸고 다시 전투지역으로 들어가 로봇을 구해 온다. 1m 남짓의 쇳덩어리가 뭐길래 이런 행동이 나왔을까. 로봇이 인간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인간이 로봇을 지키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자 지휘관은 크게 놀랐다. 저자는 이 로봇이 미군 전투원에게 위험을 감수했던 동료로 ‘의인화’되어 있더라고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강화된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핵무기는 신이 미국을 지키기 위해 보내온 천사로 해석되었다. 성직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미국 국민이 핵무기를 숭배했다. 군사장비가 의인화를 넘어 신격화되는 풍경, 그것이 냉전이었다. 그 잔상은 지금도 남아 미국의 핵무기는 패권국가 미국에 불변의 국가 상징이자, 가장 위력적인 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는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북한이 최근 영변의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1500㎞를 비행하는 순항미사일도 선보였다.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북한이 예고한 상응조치다. 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위배되는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번 순항미사일은 핵 무력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다. 아마도 순항미사일에 소형 핵탄두가 장착될 수 있다면 유사시 일본의 요코스카, 오키나와에서 발진하여 한반도에 증파되는 미군을 차단할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또한 북한으로 접근하는 미군 전력을 차단하는 반접근 전략도 구사할 수 있다.

탄도미사일이 투수가 정해진 직선 궤도에 뿌리는 강속구라면 순항미사일은 느리고 불규칙하게 날아오는 변화구다. 투수가 변화구도 구사할 수 있어야 강속구도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듯 이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의 전략적 가치를 더 높여주는 보완적 관계다. 올해 1월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대회에서 상용 로켓의 성능을 향상하고 순항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전술 핵능력을 갖추겠다고 보고한 바대로 북한은 구종이 다양한 종합적인 핵 능력, 그 자체를 목표로 거침없이 진군한다.

북한에 핵무기는 단순한 전략무기가 아니라 북한 체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초월적인 권위로 진화하고 있다. 핵무기가 북한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를 지키는 역설적 상황이 출현하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 전망의 실현 가능성은 크게 저하된다. 과거와 같이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과정에서의 비핵화 협상과 이미 핵을 보유한 지금의 비핵화 협상이 같을 수는 없다. 앞으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 대신 핵을 가진 북한이 공격적인 행동을 자제하도록 진정시키는 역할 정도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완성 직전의 북한 핵무기는 김정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북한 정치의 상징이자 숭배의 대상인 힘의 원천이다. 그러니 우리가 선의로 북한을 대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도 여기서 접자. 우리가 북한 정권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할 필요도 없다. 북한에 비핵화를 들이대면 댈수록 대화의 길은 더 멀어지고, 단절의 시간은 길어지며, 한반도는 더 불안해진다. 오히려 우리가 북한 비핵화에 매달려 초조함을 드러내면 불리한 위치를 자초할 뿐이다.

게다가 핵을 가진 북한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북한의 핵은 실제로 전쟁에서 써먹을 수 없는 핵이다. 핵을 사용했다가는 북한 정권은 파멸이라는 점을 북한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게 한반도 세력 균형은 북한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핵이 없더라도 북한의 장사정포, 화학무기 등 핵 못지않은 위협을 나열하면 끝이 없다. 게다가 이런 재래식 군사력은 핵보다 실전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면 핵 문제는 장기적 문제로 하고 일단 북한과 재래식 군사력 분야에서의 군비통제와 인도적 교류를 더 우선시할 만도 하다. 멀게는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부강한 조선’이 될 것이라는 그들의 신앙이 언젠가는 소멸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북한도 그런 대화에는 응할 것이다. 북한에 “관여를 지속하는 외교의 원칙은 변함없다”고 한 카린 장피에르 미국 백악관 부대변인의 발표도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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