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가 뭐기에..윤석열의 독특한 언론관

한겨레 입력 2021. 9. 16. 18:06 수정 2021. 9. 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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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매체에 하지 말고 국민들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 했으면 좋겠다."

며칠 뒤에는 '(정치공작이) 1단계 인터넷 매체, 2단계 메이저 언론, 3단계 정치인들 출연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제발 그런 규모가 작은 매체를 공작에 동원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 전 총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했고, 다음날 그는 '작은 규모 인터넷 매체 역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언론사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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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취재와 편집 인력이 적다고 보도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엔(n)번방 집단 성착취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대학생 기자 2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재심 무죄 사건 보도, 양진호 사건 보도 등으로 유명한 탐사보도 매체 <셜록> 도 기자 1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5명의 기자가 일하는 인터넷 매체다. '작아서 못 믿는다'는 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시민편집인의 눈] 김민정|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인터넷 매체에 하지 말고 국민들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 했으면 좋겠다.”

지난 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뉴스타파나 저 뭐죠, 뉴스 뭐였지, 뉴스버스가 하고 그리고 나서, 막 다 달라붙을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며칠 뒤에는 ‘(정치공작이) 1단계 인터넷 매체, 2단계 메이저 언론, 3단계 정치인들 출연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제발 그런 규모가 작은 매체를 공작에 동원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 전 총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했고, 다음날 그는 ‘작은 규모 인터넷 매체 역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언론사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주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 건강한 페미니즘 등 윤 전 총장의 실언인지 진담인지 모를 발언 논란은 한두번이 아니다. 국정 전반에 대한 식견과 정책적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에는 공작, 동원, 달라붙는다 등 그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는 어휘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 발언의 진의는 뭘까?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최초 보도한 곳이 인터넷 매체라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 인터넷 매체는 정치 공작에 동원된다는 건가?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의 배우자는 무슨 연유로 인터넷 매체인 <뉴스버스>를 첫 단독 인터뷰 대상으로 골랐을까?

취재와 편집 인력이 적다고 보도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는 5명 이상을 상시 고용해야만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신문법 시행령을 고친 적이 있다. ‘유사언론 행위를 규제한다’는 명분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시행령이 위헌이라고 했다. 인터넷 환경이 급변했고, 기술의 발전으로 매체가 다양해졌으며 기사를 취재하고 공급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짚었다. 따라서 “일정 인원 이상을 고용하는 것이 언론으로서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마디로 ‘작아서 못 믿는다’는 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실제 사례도 그렇다. 엔(n)번방 집단 성착취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대학생 기자 2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재심 무죄 사건 보도, 양진호 사건 보도 등으로 유명한 탐사보도 매체 <셜록>도 기자 1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5명의 기자가 일하는 인터넷 매체다.

윤 전 총장은 메이저 언론의 예시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을 들었다. 설마 지상파 뉴스에 안 나오면 세상이 모르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걸까? 시민저널리즘의 선도적 사례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게 <오마이뉴스>다. 인터넷 매체고 이미 21년 전에 창간됐다. 만약 ‘국민들이 다 아는’ 문화방송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면 윤 전 총장은 메신저에 대한 공격 대신 의혹 규명에 도움이 될 만한 책임 있는 설명을 내놓았을까? 지난해 4월 조성은씨에게 전달된 고발장에 적시된 피고발인에는 ‘검·언 유착’ 의혹을 보도한 문화방송 기자들도 포함돼 있었다는데, 오히려 메신저에 대한 공격 수위가 높아지진 않았을까?

정치 공작이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시작된다는 인식도 황당하다. 어떤 사례를 말하는 건지 무척 궁금하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언론을 이용하는 대표적 유형으로는 검찰 출입기자에게 피의사실을 슬쩍 흘리는 검찰의 언론 플레이가 먼저 떠오르는데 말이다. 검찰→검찰기자단 소속 언론사→정치인들의 입. 이런 순서로 말이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그는 좌천됐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 활동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처음 접했을 땐 도저히 믿기 어려웠던 그 의혹은 결국 진실로 드러났다. 그 진실을 밝히는 데는 트위트 28만건을 분석해 선거 개입 증거를 제시한 인터넷 매체의 힘이 컸다. 바로 며칠 전 윤 전 총장이 뉴스버스와 함께 이름도 헷갈려가며 ‘못 믿을 매체’로 거론한 <뉴스타파>다.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이 진실인지 여부는 앞으로 밝혀질 일이지만, 인터넷 매체의 보도라서 의구심을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윤 전 총장의 언론관은 필요하면 믿고 불리하면 안 믿는 ‘선택적 신뢰’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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