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서 후회 없도록..지팡이 짚고 하루 5시간 그려요"
예전엔 엎드려 작업했지만
지금은 못구부려 서서 그려
자연은 영감 원천이자 스승
최고의 밀도감 담으려 최선
홍시·단풍색 색채 묘법 16점
국제갤러리서 개인전 펼쳐
서울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만난 박 화백은 "세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밀도감을 드러내야겠다"며 "2019년 시작한 200호 작품인데 올해 말 끝날 것이며, 내년 베니스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순에도 그의 창작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두 번 넘어져 얼굴과 팔꿈치 상처를 꿰맸지만 캔버스 앞을 떠나지 못한다.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어 작업실에서 자빠져요. 서 있거나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점점 힘듭니다. 그래도 제 인생을 걸고 완성하고 싶어요. 지구에 살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 화면에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은 연필 묘법의 후속작인 듯했다. 선을 긋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이다. 다섯 살 때부터 절에 불공을 드리는 부친을 따라다녀 불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 부족함이 너무 많고 뛰어남도 너무 많아서 충돌했고 밖으로 뛰쳐나가 저항운동을 하게 됐어요. '이래선 안된다. 수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불교 교리와 도가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책을 엄청 읽었죠. 어찌할지 모르고 허둥대다가 둘째 아들이 노트 네모칸 밖으로 글씨가 삐져나가자 화가 나서 빗금을 막 그리더라고요. 그걸 옆에서 보고 '저게 체념이다'고 생각했죠. 아들이 하던 짓을 그림으로 흉내 내 수없이 반복하니까 연필 묘법이 됐어요."
스님이 염불하듯이, 도공이 물레질하듯이 선을 긋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수행하듯 작업한다. 그는 "그림은 수신의 도구"라며 "내가 달항아리에 미치는 이유는 흙, 도공, 물레가 합일이 되어 엄청난 우주를 만들며, 보는 사람들마다 안아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화백은 서양미술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감정을 토해내지만 단색화는 비워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올해 이탈리아 현대미술 백과사전에 단색화가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끝까지 살아남아 단색화를 일궈내고 세계화시켰다"며 "외국에서는 나를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번 개인전에는 2000년대 이후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색채 묘법 16점을 펼친다. 물에 불린 한지를 캔버스에 붙여 연필이나 뾰족한 것으로 선을 그어 밭고랑 형태 화면에 오욕칠정을 버리는 작업이다. 색깔 이름은 자연을 따서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으로 지었다. 그는 "자연의 내 스승"이라고 역설했다.
"2000년 일본 후쿠시마현 반다이산에서 최절정 단풍을 보고 '악' 소리를 질렀어요. 불길 같은 단풍이 나를 태워죽이려고 달려오는 느낌을 화면에 담았죠. 한강변 아파트 8층에 살던 시절에는 밤 조명으로 아름다워진 한강 다리에 매혹돼 5개 계단 형태 형광 연두 색채 묘법을 제작했고요. 제주도 바닷가에서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붙은 풍경을 작품에 담기도 했죠."
그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엄청난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예술'을 지향해왔다. "그림이 흡인지처럼 보는 사람의 고뇌를 빨아당겨줘야 편안하고 행복해져요. 자연의 색채를 내 화면 속에 유인해서 많은 사람을 치유하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요."
과거 땟거리가 없고 그림이 안 팔려도 대작에 매달렸던 그의 100호 작품은 지금 3억5000만원에 팔린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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