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가 전성기였을 때 세계대회 우승컵은 가벼워 보였다. 이창호 계산기가 어쩌다 움찔해도 조훈현 행마는 바람처럼 빨랐고 유창혁 공격은 뜨거웠다. 세계대회 우승 횟수에서 이창호의 17회는 지금까지도 1위이고 9회 조훈현 위엔 14회 이세돌뿐이다. 중국 프로로는 나란히 8회인 구리와 커제가 있다. 2012년까지 이세돌이 앞장선 한국바둑은 중국 오름세에도 세계 1등을 지켰다. 이창호 시대와 다르게 이세돌이 미끄러지면 그땐 그 후배들이 힘을 냈다. 원성진과 친구들, 최철한과 박영훈이 늘 우승권을 맴돌았다. 중국 구리가 세계대회 8관왕으로 경력이 끝난 데에는 한 가지 원성진 탓이 있다. 2011년 삼성화재배 결승3번기에서 원성진은 구리를 2대1로 꺾고 우승했다. 사람들은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는 법'이라며 기뻐했다. 백72로 갇히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인 원성진이 준비해둔 것은 패를 내어 산다는 수읽기였다.
<그림1> 백1에 잇는 것은 마구잡이 공격이어서 거꾸로 백돌이 잡힌다. <그림2> 흑1에 잇는 수, 잘못 볼 수 있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