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골프장 이용객 5000만 눈앞..골프가 아저씨 스포츠? MZ세대, 제대로 꽂혔다

오태식 2021. 9. 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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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K골프 보고서
국내 골프장 누적 내장객
1999년 1천만명 돌파한뒤
2019년 4천만명으로 늘어
코로나로 역대급 호황맞아
20대·여성골퍼 급증하며
2년만에 5천만명 돌파 눈앞
멋쟁이 골퍼 늘어나며
골프의류 60% 성장하고
브랜드수 1년새 50개 증가

◆ 매경 포커스 / 오태식의 숫자로 읽는 스포츠 ◆

한국에 들어와서 골프 관련 일을 하는 외국인들이 한국 골퍼들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avid golfer'다. '열렬한' 또는 '열정적인' 골퍼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들은 대한민국 골퍼의 이런 성향 때문에 한국 골프가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이 보는 것처럼 열정적인 대한민국 골퍼는 아주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다.

코로나19가 할퀴고 있는 2021년 대한민국에서 골프가 어느 나라, 어느 때보다 흥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한국의 골퍼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골프장은 골퍼들로 만원이고 골프장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덩달아 나락으로 떨어지던 골프장 회원권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골프에 푹 빠져 있다.

◆ 내장객 5000만명 시대 눈앞
국내에서 골프장 내장객이 1000만명을 돌파한 것은 1999년 일이다. 이후 8년 만인 2007년 2000만명을 넘어섰고 2013년에는 3000만명을 돌파했다. 세계 경제의 흐름과 함께 내장객이 전년에 비해 줄어든 해도 있었지만 골프장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져 2019년에는 4000만명 선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코로나19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2021년, 골프 내장객 '50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둔 상태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장 이용객은 4670만명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골프장 이용객은 5000만명을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훈환 한국골프장경영협회 상근부회장은 "2019년부터 2030세대가 유입되면서 이용객이 15% 성장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골프투어 수요까지 국내 골프장으로 유입되면서 이용객 증가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의 설명처럼 골프장 내장객 증가는 코로나19 영향을 제대로 받고 있다. 특히 골퍼 한 명의 1년 평균 라운드 횟수가 늘면서 내장객 증가가 눈에 띄게 가파르다.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국내에서 분풀이하듯 풀면서 라운드 횟수를 늘렸다는 분석이다.

◆ 영향력 커지는 20대 골퍼와 여성 골퍼
최근 골프장 풍속도 중 가장 큰 변화는 젊은 골퍼와 여성 골퍼가 대폭 늘었다는 점일 것이다. KDX한국데이터거래소가 삼성카드와 함께 2019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 골퍼와 젊은 골퍼의 증가가 확연히 드러났다.

코로나19 사태 이전(2019년 1~4월)과 이후(2021년 1~4월)로 나눠 비교해 보면 20대 골퍼는 1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와 40대는 오히려 감소했는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50대와 60대 골퍼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성이 9.7% 증가한 반면 여성은 11.7% 증가했다.

20대 젊은 골퍼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19와 스크린골프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새로운 취미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골프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골프에 눈을 뜨게 된 20대 골퍼들은 스크린골프를 통해 입문한 뒤 필드로 합류하는 과정을 겪는다. 골프 입문자의 경우 심리적으로나 물리적 장벽이 높은 필드보다는 상대적으로 진입하기 쉬운 스크린골프의 문을 먼저 두드리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선보인 스크린골프 산업 규모는 불과 20여 년 만인 2019년 기준 1조6400억원으로 늘었다.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지만 현재 내장객의 15~20%는 여자 골퍼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스카이72 골프장 한 관계자는 "2006년부터 내장객 통계를 조사했더니 처음 9% 정도로 시작한 여자 골퍼 비율이 매년 늘어 지금은 최소 15% 정도는 된다"고 설명했다. 또 "예전에는 주말 라운드의 경우 여자 골퍼를 보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지금은 젊은 여자 골퍼들도 많이 보이고 있다"며 달라진 골프장 풍경을 전했다.

스크린골프의 경우 여자 골퍼의 비율은 필드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골프존 분석을 보면 여자 골퍼가 15.5% 정도였는데, 이후에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필드로 이동하면 여자 골퍼의 비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골프장은 패셔니스타 천지

골프 구력이 20년이 조금 넘은 주말골퍼 박민영 씨는 최근 라운드를 하면서 골프장 풍경이 아주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골프장이 마치 골프 의류 패션쇼장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골퍼의 패션은 어느 나라보다 화려한 특색이 있다. 골프 의류 부문에서도 대한민국 골퍼는 열정적인 것이다.

KDX한국데이터거래소와 삼성카드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다른 스포츠 용품 매출 증가는 16%에 그쳤지만 골프 의류는 무려 60.4% 늘었다. 한국 골프용품 전체 시장 규모는 세계 3~4위 정도지만 골프 의류만 따지면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최고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여자 골퍼들은 꾸준히 새로운 옷을 찾고 남자 골퍼들은 골프 의류를 일상복으로 입기도 한다. 최근에는 골프 의류를 대여하는 업체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여자 골퍼의 경우 9홀 단위로 의류를 바꿔 입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다. 특히 패션에 신경 쓰는 20대 젊은 골퍼들이 증가하면서 골프 의류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작년까지 골프 의류 브랜드는 100개 정도였지만 올해는 대폭 늘어서 150개 정도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 연습도, 애정도 열정적인 한국 골퍼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프로'가 많은 나라다. 물론 진짜 프로골퍼 얘기는 아니다. 80개를 치든, 90개를 치든, 아니면 100개를 훌쩍 넘더라도 한국 골퍼들은 서로를 '프로'라 부른다. "박 프로, 오늘 몇 개 쳤어?" "어제 김 프로하고 라운드를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오 프로는 매너가 엉망이더라고" 이름 대신 성 뒤에 꼭 프로를 넣어 부른다. 프로 호칭을 붙이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자 동질감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골프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프로골퍼에 대한 경쟁심까지 갖고 있는 게 한국 주말골퍼의 성향이다. 여자 프로골프가 남자 프로골프보다 인기가 높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데, 그 이유 중 하나도 프로골퍼를 이겨 보려는 한국 골퍼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어차피 남자 프로골퍼와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여자 프로골퍼라도 이겨 보려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과 상관없이 남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것도 한국 골퍼들 성향이다. 초보자일지라도 자신보다 못한 골퍼를 보면 원포인트 레슨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내 스윙은 못 고쳐도 남의 스윙이 엉망인 것은 참지 못하는 게 또한 한국의 골퍼인 것이다.

비가 왔다가 그치면 도심은 어느 순간 골프 연습장이 된다. 긴 우산을 마치 골프채인 양 들고 빈 스윙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이다. '우산 빈 스윙'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 스윙을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골퍼'가 등장한다. 그게 거울이든 아니든 자신의 전신 모습이 비치는 곳 앞이면 저절로 빈 스윙 연습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열정을 가진 골퍼들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골퍼로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골프장 예약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린피를 비롯한 골프 이용 경비는 높아져만 가기 때문이다.

[오태식 스포츠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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