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첫 '가로수 지도' 시민이 만든다.."막 베기, 마음 아파요"

김양진 2021. 9. 1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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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강한 가지치기로 가지가 썩어들어가는데 어떡하나요?", "보호틀이 벌써 나무 밑동을 파고들어 있네요."

이론 수업을 마친 뒤 현장에 나선 이들 시민 수강생 18명이 살펴본 일부 가로수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밖에도 △잎이 달린 가지의 면적이 전체 나무의 60% 이상이 되도록 관리돼야 하고 △가로수 둥치 부위가 촉촉하게 유지되고 개방돼야 빗물·영양분이 유입될 수 있으며 등 나무 생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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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현장수업
구청 가로수 관리 정교한 매뉴얼 없어
높이·직경·식수 연도조차 관리 안 돼
"나무와 공존이 사람에게도 더 이득"
가로수 지도 앱인 ‘매플로케이(MapplerK)3’의 화면. 지난 15일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현장수업에서 수강 시민들이 처음 입력한 가로수 정보들이 표시됐다.

“이 나무는 강한 가지치기로 가지가 썩어들어가는데 어떡하나요?”, “보호틀이 벌써 나무 밑동을 파고들어 있네요.”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거리. 한 가로수를 둘러싸고 모인 10여명 시민이 가로수와 관련한 우려 섞인 질문들을 쏟아냈다. 서울 마포구와 시민단체인 자연의벗연구소,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등이 함께 만든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소속 시민들이었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거리에서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현장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론 수업을 마친 뒤 현장에 나선 이들 시민 수강생 18명이 살펴본 일부 가로수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일부 가지는 강한 가지치기로 잎 한장 피우지 못하고 검게 썩어 있었다. 둥치 주변 흙이 바싹 말라 있거나 상처 때문에 줄기에 큰 구멍이 생긴 가로수, 강제로 덮어씌운 틀 때문에 뿌리가 기형적으로 자란 가로수 등도 눈에 띄었다. 

이날 ‘나무가 어느 정도 기울어야 위험하다고 볼 수 있나요’라는 한 수강생의 질문에 강사인 이홍우 아보리스트는 “단순히 몇도 기울었다고 나무가 위험한지를 판단할 순 없어요. 그 기울기로 나무가 오랜 시간 버텼다면 그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보고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잎이 달린 가지의 면적이 전체 나무의 60% 이상이 되도록 관리돼야 하고 △가로수 둥치 부위가 촉촉하게 유지되고 개방돼야 빗물·영양분이 유입될 수 있으며 등 나무 생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현장을 찾은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소속 시민들은 올 12월까지 마포구 동교동·서강동·서교동·성산동의 개별 가로수들 종류와 위치, 높이, 흉고(가슴높이), 직경, 건강상태 등을 조사해 전국 처음으로 ‘가로수지도’를 제작할 예정이다. 개발자가 무료로 개발·제공해 준 ‘매플로케이(MapplerK)3’이라는 앱을 이용해 정보들을 입력하면 시민 누구나 가로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가로수 지도 앱인 ‘매플로케이(MapplerK)3’의 화면. 지난 15일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현장수업에서 수강 시민들이 처음 입력한 가로수 정보들이 표시됐다.

시민들이 가로수 관리에 직접 나선 이유는 구청의 가로수 관리가 주먹구구식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어떤 수종이 있는지 정도가 기록할 뿐, 나무의 높이나 직경은 물론, 언제 심어졌는지조차 관리되지 않는다. 구청 조경담당이 눈대중으로 판단해 너무 강하게 가지치기를 하거나 베어버리기도 하는 이유다.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수강 시민들이 직접 측정해 입력한 가로수 정보. 가로수 관리를 맡은 구청이 이런 기초 정보조차 관리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거리에서 이뤄진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현장 수업에서 한 시민 수강생이 가로수의 흉고(가슴높이) 직경을 측정하고 있다. 둘레를 재면 자동으로 직경이 계산되는 줄자다.

수강생 최로사씨는 “평소 가로수에 관심은 많았어도 가로수를 보는 기준이 없었는데,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수들을 보니 더 안타까웠다. 시나 구에서 할 수 없다면 시민들이 집 주변 가로수부터 돌보고 키웠으면 좋겠다”며 “수업을 통해 그동안 신중하게 해야 할 전정(가지치기)이 과도하게 이뤄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 홍승우씨도 “어느 지자체에서 수종 개량을 한다고 은행나무를 한꺼번에 베어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은행열매) 냄새는 사실 잠깐이면 지나가고, 공해물질 흡수나 열섬 완화 같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나무가 주는 혜택이 더 많다. 인간과 가로수가 서로 양보하는 게 사실은 사람한테도 이득이라는 걸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거리에서 이뤄진 ‘가로수 학교 모니터링단’ 현장수업에서 가로수의 생육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날 현장수업을 이끈 이홍우 아보리스트는 “이런 기초 데이터가 모여야 나무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앞으로 가로수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프로그램의 의의를 설명했다.

오창길 자연의벗연구소 대표는 “그간 환경운동을 하면서 기후변화나 에너지정책 등 큰 제안만큼이나 우리 마을에서 뭔가 하나라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가로수 식생 조사가 시민들의 생태인식을 높이고, 꾸준하게 실천할 수 생활권 의제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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