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을수록 좋은 생각

한겨레 2021. 9. 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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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삶의 창] 홍인혜 시인

지인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의 아이는 대여섯살로 슬슬 말이 유창해지기 시작했고 더불어 이런저런 요구나 떼가 늘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때로 곧장 ‘안 돼’라고 말하기 뭐했던 지인은 아이가 뭔가를 청하면 ‘생각해 보고’라고 말하곤 했단다. 즉답을 미뤄 생긴 유예기간 동안 아이가 저절로 시들해지길 바라는 꼼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이따 놀이터에 가자고 했는데 재택근무로 마음이 번잡했던 지인이 습관적으로 ‘생각해 보고’라고 말했단다. 그러자 우리의 꼬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생각까지 할 일이야?’

나는 이 에피소드를 듣고 빙긋 웃었다. 실은 나 역시 ‘생각해 볼게’라는 말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친구가 ‘가을부터 같이 독서 모임 할래?’ 하고 제안한다거나, 가족이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다니, 어서 면허를 따라!’라고 재촉하면 나는 늘 말한다. ‘생각해 볼게.’ 이 말을 오래 들어온 가까운 벗은 웃음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얘가 생각해 본다는 건 결국 안 한다는 얘기야.’

물론 친구의 말이 100% 옳은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숙고 끝에 내가 ‘그래, 하자!’를 외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내가 마음의 로딩 시간이 긴 사람인 것은 맞다. 나는 뭔가를 하고 싶다거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곤 한다. 실행 버튼이 활성화되기까지 고민과 상상을 거듭한다. 문제는 많은 의욕들이 생각에 겨워 제풀에 시들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생각에 빠져들면 필연적으로 불안이나 걱정의 시나리오가 늘어난다. 그 빽빽한 부정적인 예감들 틈에서 태초의 욕망과 흥미에 다시 윤을 내기란 버거운 일이다.

그런 내가 요즘 주목하는 것은 몸을 쓰는 사람들이다. 올림픽 열풍에서 시작해 축구 시합을 하는 예능을 거쳐 춤으로 싸우는 경연 프로그램까지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내 부연 머릿속을 개운하게 하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특유의 명쾌함이다. 활시위를 당기고 스파이크를 날리고 슛을 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 호쾌하고도 명징한 사고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무릇 신체활동이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백날 상상해 봤자 실제 내 몸으로 겪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천가지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시나리오만 썼다 엎었다 하느니 하루라도 빨리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 우선인 세계다. 더불어 몸은 정직해서 두드린 만큼 단단해지고 펼친 만큼 확장된다. 하나의 자세나 동작을 세포 하나하나에 새기기 위해서는 그저 한번 더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회의나 상념에 빠져 있을 시간에 ‘그냥’ 한다. ‘그저’ 해버린다.

나는 할 일을 쌓아두고 그에 짓눌려 있을 때가 많다. 당장만 보아도 내일까지 광고 카피를 써야 하고, 주말 안에 일러스트 작업을 끝내야 하고, 다음주엔 칼럼 마감이 있다. 이렇게 일이 몰릴 때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최후까지 미루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의욕이 안 생긴다는 둥 푸념하면서. 일의 실체는 주먹만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모닥불 앞에 두고 일렁이며 커지는 그림자를 보고 겁에 질린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연 할 수 있을지, 대체 왜 한다고 했는지 고민하고 의심하고 후회하며 시간만 죽인다.

앞으로는 이럴 때 ‘그냥’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상념을 덮고 노트북을 열고, 걱정을 놓고 연필을 쥐기로 했다. 생각을 백번 하면 불안만 뭉게뭉게 피어오르지만 움직이는 몸엔 불안이 깃들 새가 없다. 그리고 경험상 막상 일에 돌입하면 열에 아홉은 ‘걱정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네’ 하고 안심하게 되더라. 날로 비대해지는 생각을 멈추고 그저 움직이고, 움직임의 연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깨달을 것이다. 드디어 끝났구나. 마침내 내가 해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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