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2.0] "그림 속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이효정 기자 2021. 9. 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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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도서관이 마련한
김은영 교수의 '라이벌 열전, 조선시대 편'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조선시대 그림을 보며 해석하는 시간 가져
김은영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강의에서 김홍도와 신윤복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서울경제]

지난 15일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 정보교육관에는 정규수업을 마친 학생 30여 명이 속속 모여 들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강동도서관이 지역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길러주기 위해 마련한 강좌다.

지난 10일에 이어 두 번에 걸친 강의를 맡은 김은영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758~1813?)은 도화서(圖畵署) 화원이었다”며 “도화서 화원이 되기 위해서는 실기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기본기가 탄탄하게 다져진 화가들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화서는 조선시대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으로, 왕이 참석하는 행사 등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두 화가의 그림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닮은 점이 있다”며 명절 단오(端午)의 풍경을 그린 김홍도의 ‘씨름’과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비교해 가며 설명했다.

김 교수는 먼저 서민들이 단오를 즐기는 모습을 수묵화로 담아낸 김홍도의 ‘씨름’을 스크린에 크게 띄워 보여줬다. 그는 “화가마다 좋아하는 구도가 있는데 김홍도는 원형의 구도를 즐겼다”며 씨름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경꾼들로 둘러싸인 원의 윤곽을 확인시켜 줬다. 그는 “이 그림 한 점에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며 씨름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두 사람의 신분이 서민과 양반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림 속의 소품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그림을 살폈다.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그가 “씨름하는 두 사람이 구석에 벗어놓은 신발이 한 켤레는 짚신이고 한 켤레는 가죽신”이라고 알려주자 학생들은 일제히 “와”하며 감탄했다. 그는 부채를 들고 있는 몇몇의 구경꾼을 가리키며 “조선시대에는 단오에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며 “곧 찾아올 무더위에 농사일로 바빠질 청년들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경꾼들 중 유일하게 즐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일제히 신발과 갓을 옆에 벗어두고 두 팔로 무릎을 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앉아있는 구경꾼을 지목하며 “다음 출전 선수여서 긴장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흥미로워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단오를 맞아 몸을 씻고 그네를 타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는 “신윤복은 수직이나 수평적 구도를 즐겼다”며 “김홍도와 달리 화려한 색채를 사용했으며 배경도 자세하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냇물에 몸을 씻고 있는 여인들과 이미 목욕을 끝내고 가체를 새로 틀려고 준비하는 여인, 그네를 타고 노는 여인 등 명절을 맞아 쉬는 여인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함께 표현해 그림의 생동감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그림에 여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하자 학생들은 그림 한 구석을 가리키며 “바위 뒤에서 남자 둘이 숨어서 보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김 교수는 “목욕하는 여인들을 몰래 훔쳐보는 동자승들의 시선이 그림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김홍도는 주로 서민의 일상을 그림으로 담았고 신윤복은 양반과 기생의 풍류를 즐겨 그렸으나 두 화가의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그림 한 점에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림 속 인물과 소품들에 담긴 디테일한 의미를 발견할 때마다 작품에 대한 두 화가의 진심이 느껴진다”는 김 교수의 말에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동도서관이 마련한 김 교수의 ‘라이벌 열전, 조선시대 편’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명일여고 2학년 이정민 양은 “평소에 무심히 봐왔던 작품들 속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몰랐다”며 “그림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된 강의였다”고 말했다. 2학년 박서원 양은 “단오를 즐기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 한 점으로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점이 놀랍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

이효정 기자 hj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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