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판 돈 뺏고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강도바위 '관동대로 구질현' 명승 지정

전지현 2021. 9. 1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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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선조들 삶 담긴 옛길 6곳 명승 지정 예고
관동대로 구질현의 V자형 지형.<사진제공=문화재청>
'관동대로'는 조선시대 한양에서부터 양평, 원주, 강릉, 삼척을 거쳐 울진 평해까지 약 885리에 이르는 도로다. 그 중 '관동대로 구질현'은 강원도에서 한양, 수도권으로 향하는 관동대로 일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질현(仇叱峴,)'이라 기록돼 있으며, '광여도'에는 '구존치(九存峙)'로도 표기되어 있다. 지형이 험해 '아홉 번은 쉬고 나서야 고개를 넘을 수 있다'고 해서 '구둔치'라고 불리기도 했다.

길 주변에는 계단식 지형이나 습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대 중앙선 철로가 개통된 이후에도 주민들은 양동면 시장이나 지평시내를 갈 때에 기찻삯을 아끼기 위해서나 소나 말 등을 기차에 싣고 갈 수 없어 옛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양동장, 횡성장을 오가는 소몰이꾼들이 이 길을 자주 다니면서 강도바위 이야기가 전해진다. 강도들이 길 중간 낭떠러지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소를 팔고 온 상인들의 돈을 뺏고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남한강 수운을 이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V(브이)자형의 독특한 지형이 형성돼 있고, 옛길을 따라 울창한 수림이 우거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문화재청은 16일 '관동대로 구질현'을 비롯해 '삼남대로 갈재' '삼남대로 누릿재' '창녕 남지 개비리' '백운산 칠족령' '울진 십이령' 등 옛길 6곳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근대화의 산물인 신작로가 생기기 이전에 선조들이 오간 옛길 중 역사·문화 가치가 있고 경관이 수려한 곳을 골랐다고 덧붙였다.

조선 9개 대로 및 명승 지정 예고 옛길.<자료제공=문화재청>
옛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요한 국가 시설로 인식됐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하고 물자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삼남대로, 영남대로, 의주대로 등 수도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진 9개 대로(大路)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많은 옛길이 신작로로 바뀌면서 예전의 풍치를 잃었고, 보존된 옛길 중 상당수는 임도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명승으로 지정되는 옛길은 인간과 자연이 교감한 결과"라며 "문화, 역사, 전통 같은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어 선조들의 생활상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삼남대로 갈재 정상.<사진제공=문화재청>
'삼남대로 갈재'는 한양에서 충청도·전라도·경상도로 가는 길인 삼남대로 일부다. 고려 현종이 1010년 거란 침입 당시 이용하기도 한 삼남대로는 해남을 거쳐 제주도까지 이어지는데, 갈재는 전북 정읍과 전남 장성 사이의 고갯길이다. 전북과 전남을 가르는 지점인 갈재는 옛 문헌에 '노령'(蘆嶺), '갈령'(葛嶺), '위령'(葦嶺) 등으로 기재됐다. 송시열이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으로 정읍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통과했고, 장성에서 승리한 동학 농민군이 정읍으로 향할 때 걸었다. 길 중앙에 마차와 사람이 다니는 길을 구분하는 축대가 있고, 회전 교차로 역할을 하는 돌무지도 남아 있다.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우거져 경관도 좋다.

'삼남대로 누릿재'는 전남 강진과 영암 사이 고갯길이다. '황치'(黃峙)나 '황현'(黃峴)이라고도 일컬어졌으며,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정약용을 비롯해 송시열·김정희·최익현 등이 남긴 글이 전한다. 누릿재는 인근 다른 고갯길인 불티재보다 험하지만 거리가 짧아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 1970년대까지도 주민들이 장에 갈 때 오갔다고 한다. 정상부에는 서낭당 돌무더기가 존재하며, 길에서는 월출산과 농촌 경치를 볼 수 있다.

창녕 남지 개비리와 낙동강.<사진제공=문화재청>
경남 창녕 남지읍에 있는 '창녕 남지 개비리'는 '박진'과 '기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다. 개비리는 '개가 다닌 절벽' 혹은 '강가 절벽에 난 길'을 뜻하며, 소금과 젓갈 등을 파는 등짐장수와 주민들이 이용했다. 길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고,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등 많은 나무가 옛길과 조화를 이룬다.
백운산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사진제공=문화재청>
강원도 평창과 정선을 연결하는 '백운산 칠족령'은 조선 순조 때인 1808년 편찬된 책인 '만기요람'에 동남쪽 통로로 기록됐다. 소백산 주변 금강송을 남한강 상류인 동강을 통해 서울로 운송하던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산 사이를 굽이치며 흐르는 동강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울진 십이령 입구(내성행상 불망비).<사진제공=문화재청>
'울진 십이령'은 경북 울진 해산물과 봉화에서 생산한 물품을 교역하던 길이다. 십이령은 큰 고개 12개를 의미하며, 샛재와 바릿재 등 일부 지점이 잘 남았다. 영남 지방에서 손꼽히는 험준한 길로 사대부보다는 상인들이 많이 왕래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인 이인행은 문집 '신야집'(新野集)에서 유배지까지 가는 여정 중 십이령이 가장 험하다고 했다. 샛재에는 보부상들이 성공을 바라며 제사를 지내던 '조령 성황사'가 있고, 품질이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나무 베는 것을 금하도록 돌에 새긴 '황장봉산 동계표석'(黃腸封山 東界標石) 글씨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옛길 6곳의 명승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또 옛길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어 지자체 등에 보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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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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