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두환 축출' 역쿠데타 움직임 알고도 반대했다
[경향신문]
미 정부 5·18 민주화운동 비밀해제 문서
이범준 장군, 미에 ‘반전두환 모의’ 제보
미, 신군부에 부정적이면서도 ‘현상유지’ 선호
“12·12 되돌리려는 시도도 재앙” 사실상 반대
미국이 12·12 쿠데타 이후 한국군 내부에 전두환을 축출하기 위한 ‘역쿠데타’ 움직임을 파악했고, “12·12를 되돌리려는 시도도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한 사실이 미국 외교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외교부가 16일 미국 카터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최근 전달받은 미 정부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 문서에는 1980년 2월1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한국군 내 반(反)전두환 모의에 대해 보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미국측에 이를 제보한 인물의 실명은 ‘이범준 장군(General Rhee Bomb June)’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범준 장군은 전두환(육사 11기)보다 선배(육사 8기)인 당시 국방부 방산차관보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 대사관은 전문에서 이 장군의 제보와 관련, 전두환 측과 반대 세력 모두에 미국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사관은 “미국은 군대 내 한 집단이 12·12 사건을 되돌리려고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세력(신군부)이 입지를 더욱 강화해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 모두 한국에 잠재적으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을 모든 관련자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신군부의 권력 침탈에 부정적이면서도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군대 내 반전두환 움직임을 사실상 막았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대사관은 제보자 이 장군에게 회신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역쿠데타를 묵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12월12일 군 권력을 장악한 지휘관들이 입지를 더 강화하거나 민간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미국 정부는 다른 장교들이 12월12일 일어난 일을 되돌리려고 시도하는 것도 똑같이 위험하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이 장군에 전달할 수 있도록 국무부에 승인해달라고 했다.
대사관은 또 최규하 대통령에게도 미국이 이처럼 전두환 측과 반대 세력에 강하게 경고한 사실을 공유하게끔 국무부의 지시를 요청했다. 전문은 이 장군의 제보에 대해 “제보 내용은 신빙성이 있지만 전달 과정에서 왜곡했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카터대통령기록관이 제공한 문서(206쪽 분량) 중에는 1980년 5월8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NSC)이 메모랜덤에서 ‘80년 5월15일 서울에서 학생과 정부 간 심각한 충돌이 예상되며 전두환이 이미 2~3개의 공수여단을 서울로 이동시켰다’고 밝힌 부분도 포함됐다. 공수부대 이동의 실질적 명령권자를 전두환으로 지목한 것인데, 미국도 전두환이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판단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공개된 문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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