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로 간식으로.. 우리 입맛에 '찰떡궁합'

기자 2021. 9. 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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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요리연구가 안정현의 떡집 ‘안정현의 솜씨와 정성’의 대표상품인 모둠찰편.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사진 위는 서울 종로에서 4대째를 내려온 노포 ‘낙원떡집’의 모둠떡, 가운데는 화순사평기정떡집의 증편, 아래는 망원동 경기떡집의 이티떡.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떡’

쌀이나 밀 등 곡물을 찧어 반죽한 뒤 쪄낸 음식

시루떡·꿀떡 등 다양…추석 아침엔 송편이 제격

동치미와 먹는 인절미·가래떡은 식사로도 충분

떡도 술처럼 집집마다 고유의 레시피 있어 독특

민족 대명절 추석은 가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 번역하기도 하나 사실은 다르다. 절기상 팔월대보름은 수확 전 풍작을 기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추석 즈음에는 오곡백과가 덜 영근 상태다. 추수 감사의 의미를 따지자면 추석이 아니라 상달(음력 10월)이 맞다.

추석은 절기 중 하나며 그중에서도 최대 명절(名節)이다. 한가위·가위·가윗날·가배일(嘉俳日)·중추절 등으로 불리며 신라 때는 물론 고려 9대 속절(俗節)과 조선 5대 명절(名節)에도 당연히 꼽혔다. 이외에 설과 단오(뜻밖에도), 정월대보름 등이 명절에 든다. 농경의례에 따라 생겨난 세시풍속에는 명절과 24절후(節侯)가 있다. 명절은 태음력을 지키지만 신기하게도 24절후는 태양력을 따른다. 예를 들어 추석은 음력 8월 보름,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이다.

절기에 챙겨 먹는 음식을 절식(節食)이라 한다. 절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떡(餠)이다. 추석 아침에는 ‘당연히’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차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가을에 걸맞은 추석 명절 음식이 많지만 송편은 빼놓을 수 없다.

송편은 햇곡으로 빚어 솥에 솔잎을 깔고 쪄 먹는 반달 모양 떡이다. 소로 콩이나 깨를 넣기도 하고 앙금을 만들어 채우기도 한다. 중국은 반대로 보름달 모양의 중추월병(中秋月餠)을 만들어 먹는다. 모양은 다르지만 역시 떡이다. 떡은 ‘편(片)’이라고도 부른다. 송편이나 절편, 증편 등이 그렇다. 일본에선 모치(もち), 중국에선 가오, 베트남어로는 바인(Banh)이다.

그렇다면 떡과 빵은 결국 같은 음식일까?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주식으로 먹는 옥수수나 카사바 빵은 떡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네 떡과 비슷하다. 소를 넣거나 고물을 묻히고 과일이나 곡물을 박아넣은 것 등 빵과 떡은 그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비슷해지고 있다. 초창기 성경에선 빵을 그대로 떡으로 번역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오병이어(五餠二魚)에도 나온다. 찰기가 있는 우리의 쌀떡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스트를 넣지 않은 고대 이스라엘의 빵은 인도의 난 형태라 구운 떡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일찌감치 서양, 중동과 교류가 잦았던 중국에선 지지거나 구운 떡을 빙(餠)이라 부른다. 포르투갈의 팡(pao), 프랑스의 팽(pain)과 발음까지 비슷하다. 애초 곡물을 갈아 굳힌 다음 익히는 원리는 떡이나 빵 모두 비슷했을 것이다.

떡은 쌀이나 밀 등의 곡물을 찧어 반죽한 다음 이를 쪄낸 음식이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쌀 문화권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부피에 비해 재료가 좀 더 많이 드는 떡은 밥보다 귀했다. 같은 부피인 밥보다 밀도가 치밀한 까닭이다. 이 때문에 식량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 떡을 짓거나 술을 빚는 행위는 ‘사치’에 속했다. 비교적 부유한 사람도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 떡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닌 밤중에 웬 떡?”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그림의 떡” 등 좋은 일을 떡에 비유했다. 산에서 나타난 호랑이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등 설화 속에도 생명과 바꿀 만큼 좋은 음식으로 등장한다. 왕을 뽑을 때 떡을 물어 이의 개수를 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어도 떡의 위상은 변함없다. 명절에 회사에서 직원에게 지급하던 떡값(보너스)이 그 의미가 바뀌어 뇌물로 인용되거나, 떡고물이 부당 이득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요즘도 이사를 오거나 개업을 하면 빵이 아니라 떡을 돌리는 것이 기본이다. 생일이나 돌잔치 등 경사에도 마찬가지며 승진에도 적용된다. 모든 떡이 고급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꿀이나 팥앙금 등 귀한 재료로 만든 소나 고물을 많이 쓴 떡이야 당연히 귀한 음식이었겠지만 인절미나 가래떡 같은 경우는 식사 대용으로도 쓰였다. 조선은 전쟁 중인 군대에 인절미를 보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밥보다 보관과 휴대가 간편했고 특별히 반찬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이유로 추정된다. 인절미는 고밀도의 탄수화물을 콩가루의 단백질과 함께 섭취할 수 있어 병사들에게 영양과 포만감을 줄 수 있다.

떡은 술처럼 집집이 고유의 레시피가 있었다. 조선 때만 해도 누구네 떡이 맛있다는 얘기가 돌았고 기록에도 남았다. 당연히 제사가 잦고 여유로운 양반가다. 떡에 고유 문양을 남기는 떡살에는 가문의 정체성을 담았다. 떡살은 빌릴 수도, 살 수도 없는 하나의 ‘아이덴티티’였다.

주로 곡물이 결합돼 고명이 되고 실체가 되는 떡이지만 생각보다 열량이 높다. 여기다 맛을 더하기 위해 설탕이 함유된 팥소나 깨소(흑설탕과 깨를 섞은 것)까지 들어가면 중량 대비 칼로리가 훨씬 올라간다. 다만 콩이나 통팥 등 천연 곡물 식재료나 쑥, 모시 잎 등을 쓰기도 하니 설탕과 크림, 버터가 잔뜩 들어간 빵에 비해 극도로 열량이 높지는 않다. 식생활 변화에 따라 떡 소비량이 현저히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일상 속에서 떡을 많이 먹고 있다. 평소 떡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도 떡볶이나 떡꼬치, 떡국, 떡라면 등 알게 모르게 떡을 먹고 있다. 쌀 소비량 감소로 인해 잉여미곡(남는 쌀)이 많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떡은 이를 해결할 좋은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실제로 최근에는 떡을 전문으로 하는 셰프들이 창작한 디저트 떡이나 간식 떡이 다양하게 출시되며 젊은층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떡의 단점으로 꼽는 것은 역시 찐득거리는 저작감(sticky)이다. 말만 바꾸면 쫀득하다는 좋은 뜻인데, 보편적으로 이를 싫어하는 서구권 입맛 탓에 떡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신 특유의 찰기 덕분에 모양을 내기가 쉽다. 점토나 시멘트가 모래보다 조형을 만드는 데 나은 것처럼 크림이나 치즈, 초콜릿보다 찰기가 많고 용점이 높은 떡이 다채롭고 정교한 모양을 내기에 좋다. 떡이나 팥앙금으로 떡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집이 늘었다. 색을 내기도 좋아 모양새는 서양 크림 케이크보다 월등하다.

30년 전만 해도 떡집은 동네마다 있었다. 요즘은 죄다 돈을 줘야 하지만 그때는 쌀을 가져가면 떡을 해주고 돈이나 쌀로 받았다. 특별한 날이 있으면 시루에 층층 쪄낸 시루떡이나 가래떡을 ‘맞추러’ 다녔다. 꽤 오래전부터 제례가 많았던 종로에 떡집이 몰려 있었다. 일찌감치 낙원동에는 떡집 거리가 있었다. 영천시장 등 웬만한 전통시장에도 수십 년 영업해온 단골 떡집이,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순간, 떡은 ‘좋은 것’에서 ‘흔한 것’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먹을거리가 많은 시절을 만나 그리됐다. 하지만 떡이 없는 절기나 떡을 돌리지 않는 행사는 왠지 뭔가 빠뜨린 듯 섭섭하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형형색색 달기 짝이 없고 호화로운 양과자가 아니라 팥 알갱이 질질 흘리며 뜯어먹는 시루떡, 동치미 한 사발에 구운 심심한 가래떡이 생각날 때가 있다. 누천년 지속돼 온 농경사회에서의 떡이 가진 위상 덕이 아니다. 떡 자체의 끈끈함이 우리네 살아온 삶과 이미 닮아 있고, (그리 내세울 것도 없는) 적절한 단맛과 은근하고 구수한 맛이 이미 한국인 입맛의 주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덕인가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낙원떡집 = 무려 4대째 이어지는 노포다. 오타가 아니다. 진짜 4대를 내려온 집이다. 일제강점기에 궁중 떡 제조기술을 배운 외증조모부터 1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일찌감치 떡 가게가 들어선 종로에 위치한 까닭에 이 같은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다. 전형적인 떡부터 퓨전 스타일까지 없는 게 없다. 인절미, 꿀떡, 찹쌀떡, 쑥떡, 설기 등부터 약과, 약식까지 다채로운 떡을 구입할 수 있다. 백설기가 이 집의 인기 메뉴. 가게 옆에 따로 공방을 두고 숍에서 판매할 떡과 맞춤 떡을 제작한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38.

◇안정현의 솜씨와 정성 = 떡 분야뿐만 아니라 이바지 음식의 달인으로 꼽히는 안정현 명인의 가게다. 이른바 ‘강남떡집’으로 소문났다. 빼어난 솜씨에 좋은 재료까지 더한 맛있는 떡을 짓기 위해 여주 쌀과 전통 나무 시루를 이용하고 매일 하루 다섯 번씩 쪄내는 작업을 한다. 찹쌀떡, 절편, 꿀떡, 시루떡, 인절미, 모둠찰편 등 20여 가지의 떡을 선보인다. 여기다 콩, 밤, 대추, 잣 등을 듬뿍 넣은 연잎밥과 뽕잎약식 등까지 갖춰 이바지 음식 달인의 호칭이 과연 명불허전임을 확인시켜준다. 절구 인절미와 나무 찜기 시루떡이 가장 인기가 많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30 삼도빌딩

◇경기떡집 = 트렌드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서울 망원동에서 2대째 이어오고 있는 전통 방앗간이다. 대를 이은 명장이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다채로운 떡 종류를 선보이고 있다. 고구마를 덩어리째 올린 단호박고구마 찰떡 등 디저트와 간식으로 좋은 제품이 많다. 인기 메뉴는 이티 떡이다. 응당 떡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 앙금 소가 두둑하게 떡을 감싼다. 부드러운 앙금이 거머쥔 떡이다. 안 그래도 존재감이 강한 앙금에 수수, 쑥, 호박 등을 넣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9길 24.

◇화순사평기정떡 = 빵과 가장 닮은 떡이 증편이다. 술떡, 술빵, 기지떡, 기주떡, 벙거지떡, 쉼떡 등으로도 불리는 증편은 쌀가루를 막걸리로 발효 반죽해 만든 떡이다. 효모 빵처럼 부풀어 올라 폭신하면서도 특유의 달달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별로 유명한 기정떡이 있는데 강원 강릉과 전남 광양, 화순에 특히 유명한 떡집이 있다. 화순사평기정떡은 외가를 통해 3대째 내려오는 유명한 떡집이다. 각종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구경숙 명인이 쌀가루에 막걸리와 효모만 사용해 떡을 짓는다. 뽕잎, 울금, 자색고구마 등을 활용해 총 5가지 맛(오리지널+4색 웰빙)이 있다. 화순군 사평면 사호로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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