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트니 스피어스, 여성혐오로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다 [시스루피플]

박은하 기자 2021. 9. 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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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2019년 7월 22일 LA에서 열린 원스 어폰 어 타임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A|로이터연합뉴스

잔인한 대중문화의 희생양, 약혼 발표하며 다시 화제
페미니즘 리부트 흐름 속 ‘#프리 브리트니’ 운동…뒤늦게 도착한 사과

세계적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최근 다시 화제가 됐다. 5년간 사귄 12살 연하 연인 샘 아스가리와의 약혼을 발표하면서다. 그는 약혼 축하를 이유로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 활동도 잠정 중단했다. 브리트니는 지난 6월 법정에서 13년째 법정 후견인으로 자신의 삶을 속박하고 있는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해 대중에 충격을 안겼다. 이번 약혼 발표는 아버지가 법원에 후견인 포기 각서를 제출해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지 며칠만에 나왔다.

브리트니는 1998년 데뷔 싱글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의 대성공으로 17세에 세계적 팝스타가 됐다. 백스트리트 보이스 등 보이그룹 전성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 팝스타로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겐’, ‘스트롱거’, ‘톡식’ 등으로 세계 음반차트 1위를 석권했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사랑과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적인 시선과 조롱, 미디어의 폭력에 시달려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친근하면서도 성적인 매력을 지닌 아이콘으로 10대들의 우상이 됐지만 동시에 소위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미국 연예매체 복스는 브리트니 데뷔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여성들은 이미 평등을 이룩했고 불평할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섹시하게 입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동시에 순결의 시대로도 접어들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불평등은 이미 해결됐으며, 여성의 성공은 개인의 노력에 달렸고, 성적인 매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자유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시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임신중단반대운동이 조직되는 등 순결과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흐름도 강해졌다. 레이건 시대의 보수주의와 클린턴 시대의 호황기를 거치며 생겨난 경향이었다. 언론인 수전 팔루디는 이런 현상을 “본질적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라고 설명했다.

1998년 싱글 앨범으로 발매된 베이비 원 모어 타임 뮤직비디오


언론들은 데뷔 초부터 브리트니의 섹시스타 이미지에만 집중했다. 늘 그에게 “남자친구는 있느냐”, “첫 경험은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을 했다. 브리트니가 “혼전순결을 지킬 것”이라고 답하자 미디어는 그가 혼전순결을 지켰는지에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동갑내기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공개연애와 결별 후 언론의 성적 대상화와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20대의 삶도 위태로웠다. 댄서 케빈 페더라인과 결혼과 이혼, 양육권 분쟁이 이어졌다. 이혼 뒤에는 음주, 약물 중독, 곡예 운전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파파라치들은 끊임없이 그의 사생활을 폭로했다. 언론에서 그는 한 손으로 아이를 드는 위험한 엄마, 머리를 밀고 파파라치를 위협하는 불안정한 인물로 묘사됐다.

그는 결국 2008년 법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아버지의 통제를 받게 됐다. 법원은 브리트니가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약물중독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허락했다. 브리트니는 자신의 재산에 마음대로 손 댈 수 없었고, 정신과 약을 억지로 먹어야 했으며, 몸 속의 피임기구도 아버지 반대로 제거할 수 없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팬들은 2021년 3월 17일 LA 스탠리 모스크 법원 앞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박탈할 것을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LA|AP연합뉴스


지난 2월 브리트니가 여성혐오로 가득찬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무저지는 과정을 그린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그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가 받아온 억압과 폭력, 2000년대 미디어 환경 등이 도마에 올랐다. 온라인에서는 ‘우리가 브리트니에게 잘못했다’, ‘브리트니에게 자유를’ 해시태그 운동이 이어졌다.

브리트니가 혼전순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폭로했던 전 연인 팀버레이크는 다큐 방영 후 인스타그램에 “나는 여성혐오를 용인하는 시스템에서 수혜를 입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서 얻는 혜택을 받고싶지 않다”며 공개 사과를 했다. 브리트니는 지난해 8월 아버지를 상대로 후견인 지위 취소 소송을 냈고 지난 6월 법정에서 “삶을 되찾고 싶다”고 공개 증언을 했다.

이제 브리트니는 다시 말할 기회를 얻었다. 그가 겪었던 좌절은 개인만이 아니라 대중과 엔터네인먼트 업계 모두의 책임이라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슬럿워크 운동 등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미투 운동 등 여성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복스는 “미디어 이용자들에게도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린 시절 대중문화가 얼마나 잔인하게 전해졌는지를 알아차릴 만큼 충분히 컸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2의 브리트니는 나오지 않을까. 시사주간지 타임은 페미니즘이 이룬 진보가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타임은 “지난 10년 동안 문화적 영역에서 사회를 이끄는 힘을 보였던 페미니즘은 정치적 영역까지는 거의 확장되지 않았다”면서 “브리트니의 사례에서 배울 것은 한 시대를 진보시키려면 이전의 시대와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인스타그램에 12일 올라온 동영상 화면.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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