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국민대, 김건희 논문 검증 포기..부끄러운 일"

이유진 2021. 9.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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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은 시효에 따라 폐기되는 성질 아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부인 김건희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교수·연구자들이 소속된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의 박사학위 논문 부정 의혹에 대해 “검증시효가 지나 본조사를 실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국민대의 조처를 두고 “대학의 구성원이자 연구자들로서는 차마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민교협은 16일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 : 국민대 본부의 김건희씨 박사학위논문 부정의혹 조사중단 결정에 부쳐’라는 성명을 내어 “국민대 본부가 유력 대선 후보 부인의 학위논문 부정의혹 검증을 ‘5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포기한 일은, 대학의 구성원이자 연구자들로서는 차마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학위논문은 시효에 따라 폐기되거나 소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학위를 받은 이의 학적 언행과 제도적 자격에 대해 보장을 해주는 자격증이자, 후속 연구를 위한 중요한 선행연구”라고 밝혔다. 민교협은 이어 “특히 박사학위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자격증”이라며 “이것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논문의 저자, 심사자 그리고 전후의 모든 연구가 신뢰를 잃을 수 있으며 해당 학문 분야 자체의 자율성과 존립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중차대한 책임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효만료’를 핑계로 대학 스스로가 방기해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민교협은 “이번 국민대 본부의 박사학위 논문 부정 의혹에 대한 섣부른 조사 중단은 대학 운영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다시 조장하고, 곪은 내부의 문제를 그냥 덮어버린 것”이라며 “대학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을 믿고 지원해달라는 요구를 누구에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이에 민교협은 국민대 본부에 “박사학위논문 부정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사태의 경위와 책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 구성원들과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하고, 교육부에도 “부정 학위 수여 실태를 조사하고 대학원 및 학위정책을 전면 재고·개선하라”라고 요구했다.

이하는 성명 전문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 :
국민대 본부의 김건희 씨 박사학위논문 부정의혹 조사중단 결정에 부쳐>

1. 투명·공정에 대한 대학의 임무
올해 대학 구성원들에게 있어 최고의 화두는 ‘대학의 위기’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전국의 대학에서 신입생 충원 미달 사태가 급격히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서 많은 대학은 정부에 더 많은 재정 지원과 자율적 운영 보장을 요구해 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개별 대학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싸늘했다. 망해야 할 학교는 망해야 한다고, 인구가 줄어든 만큼 대학도 줄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학은 많은 교직원들의 생계가 달린 일터이고, 재학생과 동문의 자긍심과 소속감의 장이며, 지역 문화와 경제의 토대이기에 대학 구성원들은 자신의 대학을 지켜내고 싶어 한다.
둘 사이의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대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시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대학에서 하는 공부가 사회의 발전과 더 나은 시민을 양성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것을 믿게 만들어야 하며, 대학의 입학과 교육, 운영 과정이 충분히 투명하고 공정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들의 대학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충분해야 대학을 지원할 명분이 생길 것이다. 대학의 위기가 현실로 도래한 상황에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은 현재 대학들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2. 박사학위의 의미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국민대 본부가 유력 대선 후보 부인의 학위논문 부정의혹 검증을 ‘5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포기한 일은, 대학의 구성원이자 연구자들로서는 차마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학위논문은 시효에 따라 폐기되거나 소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학위를 받은 이의 학적 언행과 제도적 자격에 대해 보장을 해주는 자격증이자, 후속 연구를 위한 중요한 선행연구다. 특히 박사학위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자격증이다. 또 학위를 배출한 대학과 심사 교수뿐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ㆍ학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것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논문의 저자, 심사자 그리고 전후의 모든 연구가 신뢰를 잃을 수 있으며 해당 학문 분야 자체의 자율성과 존립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 나아가 누가 대학이 학문과 교육의 장이라는 것을 믿겠으며 대학의 가치를 인정하겠는가? 그런 중차대한 책임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효만료’를 핑계로 대학 스스로가 방기해 버린 것이다.

3. 국민대 본부가 할 일, 그리고 국민대를 넘어
도대체 왜 국민대 본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을까?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검증 대상이 된 특정 인물의 정치적 성격 때문인가? 그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지만 국민대가 논문 검증을 포기하며 ‘시효’를 운운한 것이 그간 쌓여온 학위 운영에 대한 병폐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심사 중단’을 계기로 국민대의 학위와 국민대 출신의 연구자들이 신뢰를 잃게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대 본부와 교수들은 이 점을 통렬히 인식해야 한다. 국민대 구성원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길 바란다.
민교협은 더 나아가 학위 수여상의 문제가 결코 한 대학의 문제는 아닐 것임을 성찰하고자 한다. 일부 대학들은 언젠가부터 등록금 동결 등 학부 운영에 가해지는 정부의 통제를 대학원의 임의적이고 불투명한 운영을 통해 우회하고 벌충해왔다. 그 결과 일부 대학에서는 ‘학위 장사’라 일컬어질 만큼 석사·박사학위가 남발되어 왔고 연구 부정이 횡행해왔다. 더 나쁜 것은 그로 인해 오히려 대다수 정직하고 성실한 연구자들이 설 기반이 좁아지고, 국내 대학 박사학위가 도매금으로 저평가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결국 대학의 잘못된 대학원 운영이 한국 대학 전체의 연구 환경을 해치고 학문 생태계를 병들게 만들고 있다.
이번 국민대 본부의 박사학위 논문 부정 의혹에 대한 섣부른 조사 중단은 대학 운영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다시 조장하고, 곪은 내부의 문제를 그냥 덮어버린 것이다.
대학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을 믿고 지원해달라는 요구를 누구에게 할 수 있겠는가. 국민대 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이런 문제를 함께 반성하고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대학의 미래는 없다. 이번 사태는 대학인 스스로가 대학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성찰하고, 연구부정과 대학운영비리에 대해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이에 민교협은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 동참을 결의한다.
1. 대학인과 연구자들의 깊은 성찰과 학계의 자정 운동을 촉구한다. 학위 논문 심사 등 모든 연구 부정과 비리에 대해 고백하고 조사하자.
1. 국민대 본부는 박사학위논문 부정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사태의 경위와 책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 구성원들과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사과하라.
1. 교육부는 부정 학위 수여 실태를 조사하고 대학원 및 학위정책을 전면 재고·개선하라.
1. 국회는 이번 정기 국정감사에서부터 각 대학의 학위 수여 부정 문제에 대한 전면적 실태 조사를 시작하라.

2021년 9월 16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2.0)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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