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엔 가입 30년, '모범국가' 도약했지만 '압축성장' 한계도
[경향신문]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선진국 그룹 이동 등 한국의 ‘선진국’ 지위 인정을 체감한 올해는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1년 9월17일 남북은 나란히 유엔의 일원이 됐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위상 변화는 유엔에서도 두드러졌다. 한국인 사무총장 배출과 각종 이사국 진출, 국제기구분담금·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등을 통해 단기간에 유엔에서 입지를 다졌다. 다만 한반도 이슈를 넘어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보다 전략적인 유엔 외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늦깎이’ 회원국에서 모범국가로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유엔 가입에 총력을 쏟았다. 그러나 북한을 지지하는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하다 동서 냉전체제가 저물어가던 1991년에야 비로소 정식 유엔 회원국 지위를 얻었다.
옵서버 신세를 면한 한국은 유엔 활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1996년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첫 진출, 2001년 유엔 총회의장국, 2006년 반기문 사무총장 당선, 2011년 반 총장 연임 등 5년마다 가시적 ‘실적’을 만들었다. 2013~14년에 이어 2024~25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세번째로 수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재정 기여도도 경제 규모에 걸맞게 올해 유엔 정규분담금 기준 세계 11위(6550만달러, 2.27%)다.
양적 성과뿐 아니라 유엔의 핵심 기둥인 평화·안보·개발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1993년 소말리아를 시작으로 레바논, 남수단 등지의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효과성 논의를 이끌고 있다.


■‘압축성장’의 그림자도 존재
30년전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은 수십년 간 국제무대에서 지속돼온 남북 간 소모적 대치를 끝냈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후 유엔은 한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구상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유엔 관련 정부 외교 역량이나 국내 관심이 한반도 문제에 과도하게 쏠리다보니 유엔 내 한국 입지 강화를 제약해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정권 교체 때마다 대북정책 방향이 180도 바뀐 탓도 있지만, 유엔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2009년부터 유엔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해오다 ‘한반도 정세 등 제반상황’을 고려해 2019년부터 공동제안국에서 빠진 것이 대표적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 문제에만 함몰되면 지역, 글로벌 의제에서 뒤처진다”며 “유엔에서 중견국 외교 위상을 높이기 위해 주도할 영역을 찾아 집중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유엔외교 정책방향 점검을 위해 설치·운영한 ‘유엔외교 독립패널’은 2018년 7월 5개 분야별 27개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3년이 흐른 지금 권고 이행 현황을 살펴보면 한국 다자외교 역량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국내 입법·제도 마련 등을 통해 독자 추진이 가능한 평화유지활동(PKO)·인도적 지원 관련 중장기 전략 수립, 국제기구분담금법 제정 등은 실현됐지만, 안보리 개혁 등 유엔 거버넌스 논의를 주도하거나 북한의 호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엔 내 남북협력체제 구축, 북한의 지속가능발전 지원 등 각종 대북 구상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유엔에 오래 관여한 외교소식통은 “유엔 내 그룹을 이끌거나 의제 선점, 회원국 설득 등 리더십 발휘가 필요한 영역에서 한국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영주 외교안보연구소장은 “강대국 간 첨예한 경쟁이 유엔 무대로도 옮겨오고 있다”며 “다자외교도 우리가 원하는 국제사회의 방향성 등 철학에 입각해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국력이 커진 만큼 담론 형성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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