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총재선거 자율 투표로… 파벌정치 변곡점 맞는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입력 2021. 9. 16. 04:50 수정 2023. 12. 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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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아소파 등 5개 주요 파벌, 29일 총재선거 각 의원 판단에 맡겨
소장파 의원들은 파벌의식 약하고 본인 선거에 도움 될 후보 밀어
고노, 출마 포기한 이시바가 지지… 결선 투표땐 기시다가 유리할수도

“각 의원의 개인 판단을 존중한다.”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2주 앞둔 14일 당내 최대 파벌(96명) 호소다파의 임시총회장. 호소다 히로유키 회장은 파벌 차원에서 지지하는 단일 후보가 없다며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과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 중 한 명에 대해 의원들이 각자 판단해 투표하라는 뜻을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5일 이 소식을 전하며 각 파벌 상황을 종합한 결과 “자민당 7개 파벌 중 5개가 이번 총재 선거에서 의원들의 ‘자율 투표’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전후 7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자민당의 ‘파벌 정치’가 변곡점을 맞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파벌 투표’ 대신 ‘자율 투표’가 실시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각 파벌이 단일 지지 후보를 정하고, 소속 의원들이 이를 따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의 경우에도 시작과 함께 5 파벌이 스가 요시히데 후보 지지를 선언해 막을 제대로 올리기도 전에 싱겁게 끝났다.

/자료=요미우리신문

자민당 파벌은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당 속의 당’이다. 자민당은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의 보수 대통합을 통해 탄생한 순간부터 두 파벌이 형성됐다.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야당보다 파벌 간 의견 조율이 더 중요한 ‘파벌 정치’가 뿌리를 내렸다. 파벌 수장은 인사권과 돈을 쥐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3년까지 한 선거구에서 의원 2~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유지돼 선거는 파벌 간 경쟁으로 흘렀다. 이후 소선거구제 개편과 기업·단체 정치자금 모금 통로의 당중앙화로 영향력은 줄었지만 전통은 유지됐다. 이들은 지금도 매주 목요일 당사에서 파벌별로 모여 점심을 함께 먹으며 단합을 다지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기 집권이 시작된 2012년 이후 파벌 정치는 인기가 높았던 아베의 개인 카리스마에서 동력을 얻었다. 아베가 속한 호소다파, 아소 다로 재무상이 이끄는 아소파,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의 니카이파만 의견을 모아도 당내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아베의 퇴장과 스가 현 총리의 총재 선거 불출마를 계기로 그동안 수면 아래 잠겨있던 파벌 정치의 쇠약함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됐다. 특히 파벌 영향력을 약화시킨 주역으로 ‘아베 키즈’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아베 집권기 때 정계에 입문한 1~3선 의원들이다. 자민당 중의원 276명 중 126명(약 45%)이 아베 키즈들이다. 젊은 의원들의 파벌 충성도는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스가 총리가 20%대 지지율에 고전하다 물러나고, 최근 지방선거에서 자민당계 후보들이 잇따라 참패하자 파벌 통제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엔 7개 파벌의 3선 이하 젊은 의원 90명이 모여 ‘당풍(黨風·정당 내 기풍) 일신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아베·스가 정권이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기 정치를 반복한 탓에 유권자의 불신을 초래했다”며 “총재 선거는 파벌 단위가 아닌 개별 의원 판단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각 파벌은 다수가 된 젊은 의원들의 뜻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율 투표 방침을 택한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젊은 의원들은 파벌의 뜻과 별개로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이 1위를 달리는 여론조사 결과에 더 신경을 쓴다”고 분석했다. 여론을 거스른 총재 선거 결과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을 경우 곧 이어 실시될 중의원 선거에서 자신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벌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할 것으로 보는 건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젊은 의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고노 개혁상이 당내 대표적인 반(反)아베파이자 이번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이시바 전 간사장과 연대하기로 발표하자 아베 전 총리 등이 역공에 나서 결국 파벌에 기반해 ‘고노 떨어뜨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노 개혁상이 이시바 전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등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인물들과 연합해 1차 선거에서 과반 이상 득표한다면 자민당 내 파벌 정치 판도는 격변할 수 있다. 그러나 결선 투표로 간다면 아베 전 총리와 아소 재무상이 전력으로 지원하는 후보 기시다 전 외무상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회의원과 지방 당원·당우들이 절반씩(각각 383표) 투표권을 갖는 1차와 달리, 2차 결선 투표(국회의원 383표, 각 지자체 47표)는 국회의원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선거 양상에 따라 도리어 파벌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국면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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