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분리· 평등의 위선에 첫 균열을 내다

최윤필 입력 2021. 9. 1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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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맥로린(Geroge W. McLaurin, 1887.9.16~ 1968.9.4)은 미국 연방대법원과 의회가 20세기 중반까지 두둔한 '분리·평등정책(Separate but Equal)'에 첫 균열을 낸 인권운동가다.

1948년 연방 소송을 통해 흑인 최초로 오클라호마 대학원 진학 자격을 획득한 그는 재학 중 교육 분리·차별이 '연방헌법 14조(인종 평등권 조항)' 위반이라며 다시 소송을 걸어 1950년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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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조지 맥로린과 '니그로'
1940년대 말 오클라호마 대학원 시절의 조지 맥로린. blackpast.org

조지 맥로린(Geroge W. McLaurin, 1887.9.16~ 1968.9.4)은 미국 연방대법원과 의회가 20세기 중반까지 두둔한 '분리·평등정책(Separate but Equal)'에 첫 균열을 낸 인권운동가다. 1948년 연방 소송을 통해 흑인 최초로 오클라호마 대학원 진학 자격을 획득한 그는 재학 중 교육 분리·차별이 '연방헌법 14조(인종 평등권 조항)' 위반이라며 다시 소송을 걸어 1950년 승소했다. 연방대법원의 1868년 판결과 1896년의 '플레시 v. 퍼거슨' 판결로 거듭 인정된 '분리·평등' 원칙이 그렇게 처음 뒤집혔다. 연방대법원과 의회가 정책을 공식 폐기한 것은 각각 1954년 브라운 판결과 1964년 민권법 이후였다.

캔자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랭스턴대 등 흑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만 61세의 맥로린이 오클라호마대 대학원에 진학하려 한 건 학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학 측은 그의 지원서 접수를 거부했고, 그는 1948년 9월 소송을 통해 지원자격을 획득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도 식당에서도 그는 '분리'당했다. 도서관 지정석은 백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신문 더미 뒤쪽이었다. 이듬해부터 소수의 흑인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들 역시 '흑인 전용(reserved of colored)'이라 적힌 공간에만 머물 수 있었다. 맥로린은 그 '분리'가 학생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교육의 기회, 예컨대 토론을 통한 의견 교환의 기회를 박탈한다며 다시 소송을 걸었고, 연방대법원은 1950년 만장일치로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물론 그 판결이 '분리·평등'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리·차별'의 실상을 처음 인정한 거였다.

당시 미국 언론은, 1968년 그의 부고에서도, 그를 'First Negro'라 지칭했다. '니그로'라는 단어가 금기시된 건 스토클리 카마이클이 니그로란 단어에 깊이 밴 '열등'의 뉘앙스를 강도 높게 비판한 1966년 연설과 이듬해 같은 제목으로 출간한 책 'Black Power' 이후부터다. AP와 뉴욕타임스 등이 잇달아 이 단어를 공식 폐기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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