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테크 기업 때리기’도 중국 따라가나

김홍수 논설위원 2021. 9.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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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극화 국민 불만 무마하려
빅테크 기업 희생양 만들어
한국, 토종 플랫폼에 중국식 겁박
독점 해법은 ‘혁신 간 경쟁 촉진’
민주당과 정부로부터 "탐욕과 구태의 상징"으로 질타를 당한 카카오가 백기를 들고, 골목상권 사업 철수, 택시 유료호출 폐지, 3000억원 규모 상생기금 조성방안 등을 14일 발표했다. 사진은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된 카카오 김범수 대표(왼쪽 세번째)/이태경기자

20세기 초 미국 뉴욕 거리엔 말 20만 마리가 매일 쏟아내는 2000t의 분뇨가 넘쳐났다. 말똥 먼지 탓에 기관지염 환자가 속출하고,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도 자주 창궐했다.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은 자동차의 등장이었다. 전기의 동력화는 더 심대한 변화를 이끌었다. 전기 엘리베이터는 고층 빌딩 건축 붐을 일으켜 도시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전기 세탁기·청소기는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경제활동인구를 곱절로 늘렸다. 10여 년 전 스마트폰의 등장은 자동차와 전기 못지않게 산업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스마트폰에 기반한 영상, 음악, 게임, 온라인 쇼핑, 핀테크 산업이 만개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더해지면서 각종 데이터 산업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중국 공산당이 느닷없이 빅테크 기업 때리기에 나섰다. 사회 양극화로 인한 국민 불만을 무마하려 돈 잘 버는 빅테크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처음엔 공산당에 대든 알리바바 창업주를 혼내더니 사교육 주범으로 온라인 교육기업을 단죄하고, 국민 사상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게임 업체까지 규제한다. 공동부유론을 앞세워 기부를 압박하자 빅테크 기업들의 거액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기업의 성장성, 잠재력을 보고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중국 테크 기업들의 주가 폭락으로 1조달러 이상 투자 손실을 입었다.

구글, 알리바바, 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과도한 시장 지배 문제는 세계 공통의 고민거리다. 미국과 유럽에선 법을 만들어 이들의 불공정 행위에 제동을 걸려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국회가 세계 최초로 입법한 ‘구글 통행세 금지법’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구글엔 영미식 법치주의 해법을 모색하면서 토종 플랫폼 기업엔 중국의 우격다짐 해법을 따라가고 있다. 여당 대표가 ‘국민 검색 엔진’ ‘국민 메신저’ 기업을 “탐욕과 구태의 상징”이라고 물아붙이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직방(부동산 중개 서비스), 로톡(변호사 검색 서비스) 등 플랫폼 스타트업까지 ‘군기 잡기’ 리스트에 올렸다. 갑자기 왜 이럴까. 코로나 거리 두기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플랫폼 기업들을 ‘골목 상권 파괴자’로 몰아가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거대 직능단체인 변호사, 공인중개사 표도 의식했을 것이다.

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이다. 정부가 ‘붉은 깃발법’을 만든다고 자동차의 등장을 막을 순 없다. 새 일자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에서 나온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소비자 쪽이 아니라 거대 이익단체 편에 서는 선택을 해왔다.

산업사를 보면, 혁신기업은 새 상품과 서비스로 시장을 장악한 뒤 한동안 독점 이윤을 누린다. 하지만 성공에 취해 통행세 징수, 골목상권 침범 같은 편한 돈벌이에 집착하는 순간 구태의연한 기업이 되고, 시장의 보복을 자초하게 된다. 정부의 역할은 혁신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해 시장의 자정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섣불리 ‘타다 금지법’ 같은 경쟁 제한 조치를 취하면 카카오 택시의 시장 독점 같은 부작용만 초래한다.

요즘 인터넷 세상은 3차원 가상세계(메타버스)로 진화하고 있다. 2차원 인터넷의 골리앗(빅테크)에겐 3차원 세계의 다윗이 천적이 될 수 있다. 미국 게임 시장을 재편한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는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빅테크 기업 견제도 시장친화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혁신은 살리면서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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