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모든 걸 다 준다는 정부, 모든 걸 앗아갈 수도 있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2021. 9.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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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졸졸 흘린 공짜 단물 이면엔 손 덜덜 떨리는 각종 고지서들
‘내 삶 책임진다’더니… 세금 내나 지원금 받으나 다 평등한 불행뿐
저들끼리 꿀단지, 멋대로 가짜뉴스 법… 이 나라, 지금 몇 세기인가

마치 샐비어(사루비아)꽃 같은 정부 지원금의 단맛을 본 사람이라면 정부가 달다고 느낄 것이다. ‘관존민비’의 그 존엄한 ‘관(官)’이 곳간을 풀어 한 방울씩 사람들 목구멍에 단물을 떨어뜨릴 때,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정부라는 것이, 깔끄러운 보리밥이나 분식을 장려하고, 수출에 혈안이 되어 밤낮없이 공장을 가동하거나, 심지어 두발과 복장까지 간섭하는, 인색하고 갑갑한 존재 아니었던가.

과거 정부의 굴뚝 연기 뒤에는 경제성장이라는 열매가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 정부가 졸졸 흘려보내는 달콤한 공짜 돈의 뒷면을, 지금 정부 들어 손 떨리는 각종 세금 고지서를 받아 든 사람만큼 절절하게 느낀 이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월급 명세서를 본 나는 과하게 부풀어 오른 건강보험료를 보고 기절초풍할 뻔했다. 뉴스를 찾아보니 지금 정부 들어 건보료가 2.7% 올랐고(그래서 직장인 건보료는 6.99%다), 건강보험공단 흑자 규모가 1조4434억에 이른다고 한다. 치솟은 부동산 가격은 모든 세금을 끌어올렸다. 세금과 건보료를 많이 낸 사람은 ‘코로나 상생 국민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체 어디가 ‘상생’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일러스트=이철원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다. 어느 인기 드라마 대사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똥조차 막지 못하는 게 인생’인데 정부가 그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책임진다고 한다. 마스크와 백신을 분배하며 나이별·요일별로 줄을 세운 것도 모두를 책임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줄을 서고 기다려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줄 맞춰 지원금을 신청했다 거절당한 사람들의 이의신청이 또다시 줄을 잇는다. 세금을 내는 사람,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사람 모두 평등하게 불행하다.

대오를 맞춰 정부 훈령대로 움직였지만 결국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 분노한 자영업자들이 전국 아홉 시도에서 차량 시위를 했다. 바쁜 그들이 짬을 내서 거리로 뛰어나왔다는 건 엄청 화가 났다는 증거다. 지난 1년 6개월간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매장 45만3000곳을 폐업(전국자영업비상대책위원회 추산)했지만, 손실 보상은 OECD 평균 16.3%에 훨씬 못 미치는 4.5%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그렇게 거둬 간 세금을 자영업자들에게 썼더라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않은 모양이다. 대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샐비어꽃의 단맛은 혀끝에 잠시 머무르다 사라질 뿐 결코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다. ‘내로남불’이 또 다른 모토인 지금의 정부는 거대한 꿀단지를 끌어안고 자기들끼리 넘치는 단맛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주혁명이든 사회주의 혁명이든,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지도층이 단물을 포기하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남들이 꽃잎에 달린 단물에 목을 맬 때 대통령 아들은 거액 정부 지원금을 챙겼다고 한다. 그런 일이 하도 흔해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렇게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정부였다면, 애초에 모두에게 자유를 허용할 일이다.

왕이 세금을 맘대로 못 쓰도록 발명한 게 의회요, 권력을 감시하라고 시민들이 작동시킨 장치가 언론이다. 17세기 무렵 개인에 눈뜬 자유로운 시민들은 해양 무역으로 유럽에 들어온 ‘이국적 쓴 물’인 커피를 마시면서 당시 지배계급을 쓴소리로 비판하고, 상업 정보를 주고받으며 힘과 부를 쌓았다. 근대 민주주의는 그렇게 싹을 틔웠다. 당시 영국 전역에 수천 곳이 성업한 ‘커피하우스’가 근대적 언론의 탄생지로 꼽히는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쓴소리는 언론 본연의 영역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찌 된 게 의회가 왕의 대리인이 되고, 지자체장은 세금을 맘대로 주무르며, 그 모든 것에 언론은 쓴소리도 맘 놓고 하기 힘들게 됐다. 입맛에 맞지 않는 뉴스를 ‘가짜 뉴스’로 둔갑시킬 수 있는 법안에 의회가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 게 맞기는 한가?

정부가 당신에게 주는 돈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빼내 간 돈이다. 유럽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미국 국부들도 나라를 세우며 “좋은 정부는 일한 사람 손에서 노동의 대가인 빵을 빼앗지 않는 정부”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들이 서로 다치게 하는 걸 막는 것 이외에는 자유롭게 놔두는 게 가장 좋은 정부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몇 세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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