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서울서 지방사람으로 살기

고재열 여행감독 2021. 9.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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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행감독을 ‘창직’하고 지방 답사가 잦아지면서 스스로 ‘서울에 사는 지방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일주일에 2~3일만 서울에 있고 4~5일은 지방에 있으니 지방사람이라는 논리였다. “할리우드는 로컬이다”라고 했던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서울 역시 로컬일 뿐이었다.

고재열 여행감독

일본에서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이 이슈라고 한다. 2017년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했던 ‘야마나시 링키지(관계)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는데, 야마나시현의 주민은 아니지만 이 지역을 지지하고, 경제적 공헌이 높으며, 지역에 애착과 귀속의식이 있는 사람을 ‘링키지 인구(관계인구)’라고 정의했다. 이 관계인구를 늘리는 지역 개발이 지역 소멸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돌이켜보니 나는 관계인구로 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지역이 아닌 여러 지역에 걸친 양다리 관계인구였다. 또한 서울과 지방의 인연을 이어주면서 관계인구를 늘리고 있었다. ‘여행을 통한 느슨한 연대’를 도모하는 ‘어른의 여행 클럽/트래블러스랩’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 일은 결국 관계인구를 늘리는 일이었다. 서울사람끼리 맺어지는 관계보다 지방사람과 맺어지는 관계가 더 잦았다.

나는 서울에 살지만 삼척시민이다. 단순한 삼척 여행자가 아니다. 올해 초부터 지인들과 삼척에 아지트를 구축하고 ‘삼척살롱’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록 코로나19 집합금지로 인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지만 마을과 관계를 맺고 ‘워킹 스테이’를 도모하고 있다. 이 삼척살롱을 통해 나와 지인들에게 삼척항의 멋진 인더스트리얼뷰를 경험해주고 있다. 나는 또한 광주 남구 주민이다.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에는 내 방은 아니지만 내려가면 당연히 묵는 방이 있다. 내 전용 찻잔과 내가 만들어 둔 ‘캐리어 도서관’이 있다. 저녁이 되면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이는 ‘양림동 호랑가시파’ 조직원들이 있다. 그들과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고 아침이 되면 함께 해장하는 나는 양림동민이다. 나는 해남군민이기도 하다. 해남에는 성이 다른 형님이 있다. 남창리 심재신 이장님이다. 내 손을 잡고 만원짜리 한 장이면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며 슈퍼를 돌며 ‘가막(가게 막걸리)’을 하다 ‘홍어 카페’에서 마무리하는 남창리는 고향인 영광보다도 친근하다.

평창 미탄마을에는 성이 다른 동생들이 있다. 산너미목장의 임성남, 청옥산농원의 이재용, 어름치마을의 최영석이 나의 동생들이다. 그들과 함께 여러 번 ‘미탄 소풍’을 즐겼다. ‘아빠랑 어디 가’라는 여행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오는 여행인데 미탄마을에 데려가서 ‘여기 삼촌들하고 놀아라’라며 자연스럽게 풀어둔다. 언제 가도 반겨주는 미탄 삼촌들이 있는 그곳은 우리 아이들의 고향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남원 동편제마을 주민이다. 이곳에서는 언제든 나만의 파티를 열 수 있다. 박화춘 박사님이 품종을 개량한 버크셔K로 만든 ‘흑돼지 바비큐’ ‘흑돼지 샤브샤브’로 밥상을 차리고 버크셔K로 만든 하몽으로 와인 파티까지 열 수 있는 이곳은 최고의 파티 장소다. ‘한국형 아그리투리스모(농촌 민박 관광)’를 구축해 다른 사람들도 우리 동네를 경험하게 해주려고 한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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