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낯설게 보기] 고시라는 낡은 부대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2021. 9.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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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교육은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 속에서 저마다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 역할에는 다양한 전문 영역이 있지만,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춰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시행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공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해내려면 무엇보다 인문학적 통찰력과 사회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입시 공부, 고시 공부만 해서는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없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우리 사회의 인재 양성과 등용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취업학원이 되다시피 한 대학과 지금의 고시제도로는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인재를 기대하기 힘들다. 교육철학부터 다시 세우고 제도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 사법고시는 폐지되었지만 사법개혁은 요원하다. 고시제도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멀리 내다보고 방향을 잃지 않고 부단히 개혁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최근 총리를 지낸 한 대선 후보는 행정고시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신분 상승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비판도 있지만, 고시가 개천 출신 용들의 등용문 기능을 잃은 지는 오래되었다. 시험 한 번으로 20년의 경력을 뛰어넘게 해주는 고시제도는 합리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다. 반세기 이상 묵은 경직된 제도로 미래를 설계하기는 힘들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술이 제대로 익는다.

교사 양성과 임용제도도 낡을 대로 낡은 제도다. 임용고시는 경쟁률이 높고 문제 난도가 높아 순간의 실수로 당락이 결정되다 보니 예비 교사들은 시험공부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다. 시험 잘 보는 사람을 뽑아서 시험 잘 보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는다면 지금의 임용고시제도가 최선이겠지만, 교육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교사로서의 자질과 교육관을 살피는 면접과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임용제도를 바꿔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아이들이 발신하는 신호도 따라서 복잡해지고 있다. 오늘날 교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아이들이 보내는 다양한 신호를 수신하는 능력이다. 서머힐학교의 설립자 닐은 교사를 뽑을 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바닷가에 놀러 갔는데 한 아이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도 더 놀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수신과 발신 능력을 동시에 점검하는 질문이다.

표준화 교육 시스템의 교사 양성과정과 평가방식은 발신 능력 중심이다. 근대 학교는 교사들이 발신만 잘해도 그럭저럭 돌아가게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교사상이 요구되는 시대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표준화 시대의 교사 양성과정으로 좋은 교사를 양성하기는 힘들다. 미래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상호작용의 총량이 더욱 늘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전방위적인 연결의 시대, 소통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된다. 교육현장이라면 교사와 아이들, 또 아이들끼리 활발히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성장이 일어나야 한다. 행정가나 지식전수자 역할만 하는 교사는 앞으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것이다.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시험문제 푸는 데 그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돕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시험공부에 올인해 고시를 통과해서는 기득권 집단에 안주하는 이들이 엘리트 집단이 되는 사회는 정체되기 마련이다. 서울대를 나와 9수 끝에 사법고시를 통과해 검사가 된 사람이 최근에 보여주는 몰상식은 이를 잘 말해준다. 개인의 성취를 위해 고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아 공무를 담당하고자 하는 이들, 안전한 직장으로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교사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 선순환의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사회도 진보할 수 있다. 교육의 역할은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이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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