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2021. 9.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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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능엄경(楞嚴經)’을 본떠 의림도인(義林道人)에게 불교의 폐해를 말한 글이 있다. ‘증의림도인효능엄경(贈義林道人效楞嚴經)’이 그것이다. 그중의 한 단락.

“의림이여! 이제 세간을 살펴보면 선악에 대한 보답이 일정치가 않아 끝내 허망한 데로 돌아가고 말았다네. 부처가 열반에 든 뒤 오랜 세월이 쌓인지라 정신이 신령치 않아, 들어도 알지를 못하기 때문일세. 천당에 줄지어 선 염라의 여러 관원들은 사적인 청탁을 들어주며 몰래 뇌물을 받고, 소 대가리같이 생긴 나찰(羅刹)과 말의 낯짝을 한 나졸들은 조종하고 기만함이 오로지 뇌물의 많고 적음만을 따른다네. 저승의 법도가 드러나지 않음이 옛날과는 다르고, 부처의 계율은 실추되어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네.”

우두마면(牛頭馬面)의 나찰과 나졸들이 청탁과 뇌물에 따라 선악의 보답을 농단하여 조종과 기만을 일삼는다. 착한 일을 해도 아무 보답이 없고, 악한 짓을 저질러도 상응하는 징벌이 없다. 이래서야 누가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겠는가? 이기면 그게 선이고, 걸리지만 않으면 악이 아니다. 걸리더라도 뇌물만 찔러주면 모든 것이 무사통과다.

이덕수(李德壽·1673~1744)는 고을 원이 되어 떠나는 윤유(尹游)를 전송하며 써준 ‘송윤백수서(送尹伯脩書)’에서 이렇게 썼다.

“세상을 보니, 위엄을 마구 부리는 자는 형틀과 차꼬를 관청 뜨락에 늘어놓고 매질함을 그치지 않아, 흐르는 피가 땅을 붉게 적신다. 사나운 액예(掖隸)로 몽둥이를 들고 문에 선 자는 우두마면인 데다, 매처럼 쏘아보고 수리처럼 눈을 꿈뻑인다. 명령을 전하는 소리가 관청 뜰에서 거리까지 들려, 사람으로 하여금 벌벌 떨며 마치 나찰국(羅刹國)에 들어가거나 시왕전(十王殿)을 딛는 것처럼 만든다. 저 백성들이 간담이 서늘하고 다리가 덜덜 떨려, 또 어찌 하고 싶은 말의 열에 한둘이라도 마칠 수가 있겠는가?”

윗사람은 판단을 잃고 승리와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그 틈에 우두마면들이 멋대로 기승을 부린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눈금을 잃었다. 이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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