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배경으로서의 건축
[경향신문]
서울은 산과 물의 질서에 순응해 구성된 작은 스케일의 다양한 영역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형성된 매우 독특한 역사 도시이다. 이 도시의 영역을 규정하는 한양도성 또한 이러한 땅의 질서를 존중하여 축조되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순성 안내쉼터는 성곽 길 탐방 안내와 휴식을 위한 시설로, 설계 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직단 뒤편, 경사가 심한 인왕산 둘레길 초입의 자그마한 대지를 이용하는 것이 공모전의 취지였다. 그러나 이 작은 땅은 인근 주민들의 쉼터이자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던 터라 적잖이 고민이 되었다. 공모의 지침을 따르자니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없어질 판이었다. 결국 나는 공모전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잡초들로 무성한, 비탈진 구석 땅을 찾아서 도성 둘레길과 동네 쉼터를 매개하는 정자(亭子)를 제안했다. 이 동네 공동체의 마당을 그냥 둔 채, 옆 성곽 사이의 완충 경사 녹지를 활용하여 지형을 보존하고 주민과 성곽 방문객 모두에게 열린 복합적인 쓰임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늘을 위한 큼지막한 처마가 만들어졌고, 그 하부로는 경사지가 계단식 스탠드로 단단으로 만들어져 탐방객 쉼터이자 작은 문화마당의 관람석 역할을 한다. 이전의 동네 마당은 그대로 비워져 주민들과 탐방객의 여러 행위들이 서로 조우하게 되었다.
성곽이 지형을 따라 축조되었듯 안내쉼터의 구성 또한 원래 있던 것들의 관계성에 순응하며 비워진 장소를 형성한다. 그것은 불확정적이지만 다양한 성격의 이용자들이 창의적인 행위로 채워가며 각각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동네 아이들에게 이곳은 방과 후 놀이터가 되었고, 이웃과 담소를 나눌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은 주민들은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서 이곳을 이용하기도 한다.
만일 한양도성 안내쉼터가 이 터를 점유하는 목적물로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한 단순한 기념비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중심이 아닌 옆으로 비켜나, 끊어진 지형을 앉거나 다니기 편한 것으로 이어주고 그늘과 비를 막되 경치를 열어주는 배경이 됨으로써 보다 풍부하게 다른 것들을 포용한다. 자기 완결의 형태가 아닌 것은 주변을 위한 배려이며, 그 의도된 부족함을 통해 주변을 포용하면서 비로소 그것은 전체적으로 완성된 풍경이 된다. 이러한 열린 관계성을 토대로 한 공간적 가치는 사실 우리 건축이 가진 고유한 작동원리이자 본질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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