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보름달과 우주여행

2021. 9. 1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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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민족 대명절 한가위다. 한가위는 음력 8월 보름으로 정해놓다 보니 양력을 사용하는 오늘날 한가위의 날짜는 매년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가위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이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름달이 뜬다는 사실이다. 우리 민속 명절 중 이처럼 보름달을 기념하는 명절이 한가위와 정월 대보름 두 가지나 있으니 보름달이란 상당히 각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사실 달과 관련한 풍습, 신화, 전설 등은 어떤 문화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밤하늘에 보이는 가장 큰 천체인 동시에 날마다 모양이 바뀌는 것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천체인 만큼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리라. 이런 호기심에 힘입어 인간은 수천년 전부터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달의 크기 등을 계산해보기도 했지만, 육안이나 간단한 망원경을 바탕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 때문에 달은 오랫동안 지구 주변을 떠도는 신비하고 기묘한 천체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와 독일의 헤르만 오베르트 등을 필두로 1920년대 로켓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으며 20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우주 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덕분에 보다 정확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달의 크기와 질량, 달을 이루는 성분, 달의 탄생 시기 및 과정 등 달에 대한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이자 지구의 유일한 위성으로서, 인간이 지구 바깥의 세상을 탐험하기로 결심한 순간 가장 먼저 답사해야 할 목적지로 달이 꼽힌 것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닐 암스트롱~베이조스 '우주의 꿈'

오늘날 우리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을 인류 역사에 손꼽을 정도로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당대에 아폴로 임무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적잖은 사람이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인간의 달 탐사를 자원 낭비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달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누군가의 삶의 질이 당장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간사에는 언제나 공공의료나 교육 등 그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같은 비용을 이런 서비스에 투자하는 게 일견 훨씬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루이스 멈포드 같은 사회학자는 우주 비행체를 ‘파라오의 미라가 천국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줄 장비들을 담아 놓은 피라미드의 밀실’에 비유하며 달 탐사를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의 힘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임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았고, 이런 관심에 편승해 허황된 상업적 기회를 노리는 이들 역시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팬아메리칸 월드항공(팬앰)이 모집한 초대 달여행자 클럽(First Moon Flights Club)이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와 같은 소설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기 전부터 우주여행을 꿈꿔왔으니,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임무가 공개됐을 때 달여행을 실현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팬앰은 이런 사람들의 꿈에서 상업적 기회를 봤다. 문제는 팬앰이 아폴로 임무가 성공하기도 전에 상품을 기획해 2000년에 출항을 약속하고 회원을 모집했다는 사실이다. 팬앰은 달여행을 성사시킬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1991년 폐업했으니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난 셈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팬앰 초대 달여행자 클럽 회원카드가 희귀 소장품으로 남기도 했다. 팬앰의 이토록 허황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무려 9만 명 이상의 회원이 모였으니, 당시 달탐사와 우주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다.

올여름 버진그룹의 창립자인 리처드 브랜슨과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우주비행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팬앰이 폐업한 지 30년 만이다. 언론들은 민간 우주여행의 서막인 듯 앞다퉈 보도했지만, 수분간의 무중력 우주비행을 위해 수백억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니 사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갑부들의 돈놀음에 불과하다.

달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우리에게 손에 잡히는 돌덩이로 존재하기보다는 토끼가 방아를 찧는, 치즈로 만들어진 신비하고 기묘한 상상의 공간으로 남아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과학의 매력은 때로는 이런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다는 데 있으니, 이번 한가위에는 보름달을 보며 앞으로 어떤 상상을 현실로 만들면 좋을까 고민해 보며 소원을 빌어도 좋겠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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