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00] 정식 인스티튜트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21. 9.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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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정식 인스티튜트

십여 년 전만 해도 뉴욕에는 그럴듯한 한식당이 없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 중국과 같은 음식 강국은 물론이고, 페루나 인도, 태국, 베트남 등의 웬만한 나라들도 고급 레스토랑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 무렵 트라이베카(Tribeca) 지역에 개업한 ‘정식’<사진>은 뉴욕 한식의 수준과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식재료를 응용한 음식의 맛과 깊이, 세련된 연출과 빈틈없는 서비스는 이제까지 없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인스티튜트(Institute)’라는 단어는 시설이나 장소, 또는 ‘설립하다’, ‘창조하다’라는 뜻을 가지는 라틴어에서 기원했다. 현재는 연구소나 대학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인재를 배출하는 기관’의 뜻으로 교회, 병원, 회사, 호텔 등에도 해당되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사회에서 “어느 기업 출신이다”, “어느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다”라고 사용하는 표현처럼, 어디 출신이라고 하면 인정해 주는 문화도 이런 어원과 연관이 있다.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정식 인스티튜트

하나의 레스토랑이 자체적으로 성공한 것뿐 아니라, 훌륭한 직원을 많이 키워서 배출시킨 경우도 ‘인스티튜트’라는 표현을 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엘 불리’, 코펜하겐의 ‘노마’, 캘리포니아의 ‘프렌치 런드리’ 같은 레스토랑들이 그런 범주에 속한다. 그곳 출신 셰프들의 활약과 업계에 공헌한 가치를 높게 사는 것이다. 그동안 ‘정식’을 거쳐 간 직원들은 현재 뉴욕의 외식업계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셰프 두 명이 독립하여 각각 미쉐린 원스타와 투스타를 받았고, 정식 출신의 소믈리에는 세계에 269명밖에 없는 마스터 소믈리에가 된 이후, 미국 전역에 한국의 전통술을 소개하고 있다. 뉴욕 인근의 유명 베이커리 한 곳도 ‘정식’의 초대 페이스트리 셰프가 운영하고 있다. ‘정식’ 사단에서 획득한 미쉐린 별만 7개다. 이런 과정과 결과로 뉴욕에서 한식의 위상은 치솟았다. 정부도 하지 못하고 기업도 하지 못한 일이다. 금년에 가장 핫한 뉴욕 레스토랑의 트렌드 중 하나가 ‘모던 한식’이다. 그 움직임을 ‘정식’ 출신들이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엊그제 개업 10주년을 맞은 ‘정식’은 이제 명실공히 뉴욕 한식의 ‘인스티튜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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