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율 50% 였는데.. 유방암 이겨낸 27세 女의사의 조언
10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날은 평생 잊히지 않을 날이 될 것이다. 27세 젊은 여의사는 하루아침에 의사 가운을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게 됐다. 좋은 의사가 되려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건만, 순식간에 그 생활을 내려놓고 환자가 되었다. 내가 내린 처방과 검사를 겪는 처지가 됐다. 환자가 느끼는 ‘불편감’이나 ‘통증’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최종적으로 ‘유방암 3기’로 진단됐다. 수술 및 항암제, 방사선 치료, 3종 세트가 필요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내가 5년 뒤에 살아있을 확률은 50%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유방암 치료 시작은 8번의 항암제 투여였다. 4차 항암 치료를 한 후 약을 바꾸어 다음 4차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사실에서 항암제를 투여받고 나면, 이후 항암 치료 부작용을 겪어 내는 과정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오로지 환자만의 시간이었다. 아무리 큰 권세와 재물이 있다 한들, ‘투병’은 환자 스스로 오롯이 겪어내야 한다. 어느새 나는 철학자가 됐다.
암 치료가 힘든 것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립과 치료 끝이 죽음일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젊은 암 환자로서 내 주변에 질병으로 무릎 꺾여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들과 죽음의 공포나 고단한 투병의 내밀한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없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웠다.
항암 치료 다음은 수술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 몸을 100% 내보여 맡기는 상황이다. 의사로서 늘 환자들에게 받았던 수술 동의서였는데, 내가 당사자로서 서명을 할 처지가 되자, 비록 0.001%의 확률일지라도 수술 후유증이 걱정됐다. 수술 전날 어두컴컴한 병동을 서성였다.
병원은 극단적 감정이 교차하는 곳이다. 수술 전야에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짊어진 환자가 있는가 하면,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와 첫 대면을 하고 세상 모든 행복을 누리는 엄마가 한곳에 있다. 2달 동안 고군분투하다 끝내 세상 떠난 환자 자리를 병실이 없어 대기하던 응급 환자가 병실이 나서 다행이라며 눕는 게 병원이다. 의사는 한 시간 차이로 같은 병상 다른 삶을 마주해야 한다.
전신 마취와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전날 밤의 눈물이 호들갑이다 싶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수술 2주 동안 달고 다녔던 피 주머니를 빼는 것으로 외과 진료는 종결됐다. 이제는 방사선 치료다. 가슴 부분에 가로세로 선들을 긋고, 3주 동안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매일 병원을 간다는 게 환자에게는 고통이다. 현재는 밝은 미래를 위해 저당 잡히는 시간이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8개월, 드디어 항암·수술·방사선 3종 세트가 다 끝났다.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될 줄 알았건만, 이게 웬걸, 그동안 정상 세포들도 공격했던 독한 치료들이 모두 끝나자 잡고 있던 한 가닥 동아줄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이제 뭘 어떻게 하지?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의사 면허를 반납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근거 없는 근심들이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그럴 땐 관심을 돌리는 게 최고다.
4년 뒤에 내가 생존해있을 확률은 절반이지만, 지금 내 삶의 오늘은 여기에 있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꾸역꾸역 해나갔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내과 전공의로 복귀했다. 투병 경험은 의사로서의 궤도를 수정하게 만들었다. 의사의 역할은 정확하게 진단해주고 치유 과정을 고민하면서, 환자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루가 쌓여 알레르기내과 전문의가 되었고, 결혼도 했다. ‘무사히’ 아홉 살 아이 엄마도 되었다. 지금도 투병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들이 내 삶과 같이 공존한다. 하지만 내가 생존율 50%에 좌절하고 주저앉았다면, 지금의 행복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공평한 사건이다. 하지만 나에게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완결이다” 투병 기간 중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날들 동안 내린 결론이었다. 내 삶의 최종회가 찾아오기 전 한 회, 한 회 후회 없도록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지키며 살 것이다. 지금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을 많은 암 환자들에게 감히 말한다. 암이 가져다 주는 선물도 있다고, 힘 내어 잘 버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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