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어눌해서"..뇌경색 노인 신고 묵살한 119

오경묵 기자 2021. 9. 1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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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충북 충주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80대 노인의 구조 요청을 119가 장난전화로 판단하고 부적절한 대응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노인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15일 충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충주에서 혼자 사는 A(82)씨는 지난 6일 오후 10시쯤 자택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A씨는 두 차례에 걸쳐 휴대전화로 119에 신고를 했으나 119는 출동하지 않았다. 첫 번째 신고는 받자마자 끊겨 ‘무응답’ 처리됐고, 두 번째 신고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접수가 되지 않았다. 발음이 어눌해지는 것은 뇌경색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다.

하지만 상황실 직원이 구조대에 출동을 요청하지 않으면서, A씨는 다음 날 오전까지 7시간 넘에 방치되다가 가족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사실은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충청북도 소방본부 119 종합상황실 직무유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글을 올린 것은 A씨의 딸이다. 청원글에 따르면 A씨는 7일 오전 6시 45분쯤 딸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이상하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이에 딸이 A씨의 집을 방문해 119에 신고했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A씨는 뇌경색과 우측 운동신경 손상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은 A씨의 통화기록을 확인한 결과 119에 두 차례에 걸쳐 신고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딸은 당시 A씨가 33초 간 통화에서 “여이 **동 여하이에 시비일에 시비”라고 말하고 다시 “**동 에 시비일에 시비 에 여런 아이 죽겠다(중략)”라고 한 녹취록을 올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가 어눌한 발음으로 주소를 불러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가만(잠깐만) 오실래요” 등 구조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딸은 “녹취록을 받아본바 가족들은 119의 대응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A씨의 딸은 “일반인인 제가 봐도 응급구조 사인(신호)인데 전문적으로 이 일만 하시는 119 대원분들은 이 전화를 왜 오인신고로 판단한 것이냐”라며 “가족들에게 처음에는 무응답 신고라며 거짓으로 일관한 충청북도 소방본부 119 종합상황실을 더는 믿을 수도 없고, 내부 자체 조사를 한다는 그 말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아빠는 82세로 고령이기는 하나 공공근로도 다니시고 젊은 저보다 체력도 좋고 건강하셨다. 하루아침에 병원에 누워 기저귀를 차시고 식사도 코에 넣은 줄로 유동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아빠가 신고한 그날 출동만 했더라도 아빠가 지금과 같은 상태는 분명 아닐 거라고 본다”고 했다.

충북소방본부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신고를 받은 직원에 대한 감사를 요청했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매뉴얼 상 노인이 신고할 때는 주의를 기울이고, 접수된 신고는 출동을 원칙으로 한다”며 “현재 직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감사 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와 수위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방 당국은 직원교육을 강화하는 등 재발 방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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