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를 평화·생명지대로' PLZ 페스티벌..바람에 실어 보낸 '평화의 선율'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2021. 9. 1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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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계선 너머를 향한 피아니스트 6명의 '울림'

[경향신문]

강원 양구군 파로호 꽃섬에서 지난 11일 열린 PLZ 페스티벌 순회 연주회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헤르트 서울대 교수(오른쪽)와 임효선 경희대 교수(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연주를 하고 있다. PLZ페스티벌 제공

“바람이 음악을 실어 분계선 너머로 보내 주면 좋겠네요. 음악은 결국 평화이니까요.”(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헤르트)

파로호 꽃섬에는 여름의 끝이 당도해 있었다. 절정을 지난 짙은 녹음 속에 매미들의 합창이 한창이었다. 지난 11일 강원 양구군에서 열린 PLZ 페스티벌(예술감독 임미정) 야외 연주회 장소에는 두 대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김희진,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페테르 오브차로프 등 국내 대학에서 강의하는 6명의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은 강한 햇살과 바람, 매미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당초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기로 했지만, 전날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탓에 무관중 콘서트로 진행됐다. 덕분에 피아노 선율이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강우성)의 감미로운 인상주의 선율로 시작한 연주는 피아니스트 4명이 울력한 ‘아리랑 변주곡’에서 절정을 찍고,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op.5’(라이헤르트, 임효선)의 낭만주의로 마무리 지었다.

연주회 내내 매미 소리가 간단없이 들렸고, 산책 나온 주민들은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자그마한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은 연주자들은 초가을 강한 햇볕 아래 연주를 마친 동료가 송글송글 땀이 맺힌 얼굴로 돌아오면 낮은 목소리의 “브라보”로 서로 격려했다. 햇빛은 피아노의 현을 무장해제해 연주회 도중 조율사가 나섰고, 바람에 악보가 날려 페이지터너가 긴급 투입되기도 했다.

야외 연주를 처음 해보았다는 오브차로프 연세대 교수는 “모든 분계선과 리미테이션(제한)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경계선의 리미테이션이건, 코로나 리미테에션이건!”이라고 말했다. 텔아비브 출신 라이헤르트는 “이스라엘도 한반도처럼 늘 평화가 아쉬운 나라”라며 “하지만 평화와 통합이 음악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강우성 강원대 교수는 “음악은 오디언스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하니까…”라고 아쉬워하며 “언제라도 북한에 올라가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생명지대(PLZ, Peace & Life Zone)로 바꿔놓자는 분계선 순회 연주회는 지난 7월 철원 도피안사에서 출발해 인제와 최북단 제진역 등을 거쳐왔다. 오는 10월 인제, 화천, 철원의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끝난다. 올해도 진행이 녹록지 않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데다가 코로나19로 일정 변경이 잦기 때문이다.

관중이 있더라도 메아리 없는 외침이긴 마찬가지였다. 분계선 너머에서 어떠한 반향도 내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거꾸로 간다. 북은 꽃섬 연주회 당일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그럼에도 음악인들은 왜 분계선 부근을 떠나지 못할까. 임미정 한세대 교수는 “PLZ 페스티벌은 음악과 함께 평화와 생명을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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