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작가 "90세부터 갓난아기까지 4000여명 고려인 만났다"

이혜인 기자 입력 2021. 9. 15. 22: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김진석 작가는 4000여명의 고려인을 만나며 “이들은 우리와 유사한 문화와 풍습을 유지하는 동포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강윤중 기자 yaja@kyounghyang.com
2016년 카자흐스탄 방문 계기로 관심
청와대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달려가
우즈벡부터 국경 넘으며 11개국 돌아
독립운동가 후손들 가장 신경 써서 취재
국내 잘 알려지지 않은 후손도 담아

“고려인 사진을 찍으러 카자흐스탄에 갔는데, 첫 일주일 동안 한 장도 못 찍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고려인은 불쌍한 이미지인데, 막상 가서 보니 너무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거예요.”

‘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가진 김진석 사진작가(48)는 2016년 카자흐스탄을 찾았다. 당시 그는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에서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지역에는 고려인이 많이 살고 있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문화원의 소개에 끌려 수락했다. 고려인은 19세기 후반부터 농업이민이나 항일독립운동 등을 이유로 극동 시베리아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과 그 후손들이다. 구 소련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에 약 50만명이 살고 있다. 낯선 땅에서 이들이 겪은 역사는 서글프다. 고려인들은 일본군 밀정이 섞여 있는 집단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스탈린 정권에 의해 1937년 다른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최봉설(활동명 최계립) 선생의 딸 최 알렉산드라(왼쪽 두 번째)와 가족.

김 작가는 “척박한 환경에서 차별을 받아온 역사가 있다는 자료들을 읽고 그 이미지를 상상하며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 고려인들과 어울려 술만 마신 끝에 ‘현재의 고려인을 기록하자, 그것이 과거의 고려인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란 결론에 도달해 카메라를 들었다. 고려인과 김 작가의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다. 초기 정착한 1세대부터 4세대까지, 양로원에 있는 90세 노인부터 K팝 댄스를 추는 10대 청소년까지 수백명 고려인의 얼굴이 담긴 사진집 <고려인, 카레이츠>를 낸 김 작가를 지난 13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강 스베틀라나(오른쪽)
강 스베틀라나의 딸 조유나양(두번째 사진 가운데).

김 작가는 2017~2018년 1년4개월 동안 청와대 춘추관에 소속돼 대통령 전속 사진작가로 일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을 찍는 등 “한국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장면들을 찍었”지만, 언젠가 고려인을 다시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2018년 8월 청와대를 그만두자마자 카메라 두 대를 걸머쥐고 다시 고려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진집에 담긴 사진은 그가 2019년 초부터 1년6개월에 걸쳐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 러시아 등 11개국 30여개 도시를 돌면서 4000명의 고려인을 만나 찍은 것들이다. ‘카레이츠’는 러시아어로 고려인을 뜻한다.

“1937년 강제이주의 종착지, 우즈베키스탄으로 먼저 갔죠. 거기서부터 계속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면서 고려인들을 만났어요.”

키르기스스탄에 살고 있는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증손자 허 블라디미르(왼쪽)와 그의 가족.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고려인협회를 찾아가 한 명을 소개받고, 그다음 한 명을 이어서 소개받는 식으로 고려인들을 만났다. 그는 “웬만하면 직업이나 연령 면에서 다양한 사람을 다 만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양로원, 병원, 대기업 등 다양한 장소를 찾아 고려인을 찍었다. “고려인의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 갓난아이가 있는 곳부터 장례식장까지 갔다. 1세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말을 하지 못했으나, “우리와 유사한 문화와 풍습을 유지하는 동포”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장례 문화를 보면 러시아 정교회의 방식을 따르기도 하지만,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방식은 우리와 유사해요.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 등의 문화와 풍습도 유지하려 하고요. 고려인은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고, 근면성실하다는 평을 받으며 그 지역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최근 한류 열풍과 맞물리면서 한국인의 위상이 더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독립운동가 한창걸, 한성걸, 한 알렉산드르 3형제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한 블라디슬라브. 우즈베키스탄 거주.

그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신경써서 담고 싶었다”고 했다. 책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들 사진도 실려 있다. 1920년 독립운동 군자금 마련을 위해 간도은행 현금을 탈취한 독립운동가 최봉설(당시 최계립으로 활동) 선생의 딸인 최알렉산드라와 가족들, 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의 손녀 계타치아나와 증손녀 계이리나 등이다. 이외에도 독립운동가 후손 수십명의 모습이 담겼다. 김 작가는 “카자흐스탄에만 독립운동가 후손이 500명가량 있다”고 전했다. 이어 2016년에 홍범도 장군 묘역이 있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갔는데 전혀 관리가 안 된 상태여서 충격을 받았던 경험을 말하며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고려인, 카레이츠>를 고려인 커뮤니티에 보내는 ‘책 보내기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이 우리 사회는 물론 각국의 고려인 사회까지도 서로 이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고려인의 얼굴을 계속 카메라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