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6일간 온전히 입을 닫아보니

한겨레 2021. 9. 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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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법인스님의 대숲바람]

영화 <무문관> 포스터.

누구나 한번쯤 무문관을 원하다 .

열지 않으면 문이 아니다

닫지 않으면 문이 아니다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멈추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말하지 않으면 말이 아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말이 아니다

보라 여기 피어 있는 한 송이 꽃

온몸 그대로 온전히 눈부시구나 . < 법인 , 박노해 시인의 시를 모방하여 지음 )

8 월 한 여름 , 실상사 각 영역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활동가들이 절을 떠나 절로 갔다 . 인근 남원시 산동면에 자리하고 있는 귀정사에서 나흘 동안 쉼을 갖기 위해서다 . 귀정사는 실상사가 중심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수행도량이다 . 이곳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만든 사회적 쉼터이다 . 듣자니 송경동 시인이 귀정사에서 탈진한 심신을 회복한 게 인연이 되어 만들었다고 한다 .

나흘 동안 쉼을 마치고 돌아온 활동가 법우들의 표정은 환했다 . 익숙한 길을 떠나 새길을 찾고자 겪은 마음의 갈등과 피로를 해소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 나흘 동안의 일과는 매우 간단했다 . 활동가 안거의 주제는 ‘ 관 ( 觀 )’ 이다 . 그저 고요히 자신과 자연을 살피라는 뜻이다 . 하루 일과는 밥 먹는 일 , 저녁 예불 , 한 시간 정도 도량 가꾸기 , 그리고 한 번의 차담이 전부였다 . 그 외 시간은 책을 보든 , 잠을 자든 , 산책을 하든 , 글을 쓰든 ,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 규칙도 최소한이다 . 가능한 말을 하지 않고 침묵과 고요에 잠기는 것 , 가급적 혼자 지내는 것 , 그리고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고 휴대 전화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다 . 이런 제안에 법우들은 매우 좋아했고 , 겨울에는 공동체 전체 식구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했다 .

스님들이 3개월씩 방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수행 정진하는 강원도 인제 설악산 백담사 무문관.

대개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 요약하자면 ‘ 사람들과 ’ 뭘 ‘ 많이 한다 ’ 는 것이다 . 많이 말하고 , 많이 일하고 , 많이 먹고 , 많이 어울려 다닌다 . 많이 보고 듣고 , 많이 자신을 드러낸다 . 그리고 너무 많은 생각을 짓는다 . 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일들을 많이 한다 . 이건 분명 치우친 삶이다 . 일방적이다 . 한쪽에 치우치면 균형을 잃고 조화를 잃는다 . 삶의 중심이 무너진다 . 그래서 붓다는 중도를 , 공자는 중용을 말했으리라 . 중심이 무너져 불안정한 삶을 세우기 위한 해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일방에 치우지지 않으면 된다 . 무엇에 집착하지 않으면 된다 . 그래서 쉼이 필요하다 . 쉼은 곧 멈춤이다 . 멈추면 평소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인다 . 중심을 세우는 중도적 삶은 이렇게 멈추고 , 살피고 , 잘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

“ 말을 안 하니 마음의 소리와 자기 자신의 수많은 과거와 저 자신을 잘 생각할 수 있었고 , 여기에 있으면서 ‘ 빛은 내일이다 ’ 라는 믿음이 더 잘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

올 3 월 , 5 박 6 일 과정의 ‘ 무문관 ’ 을 마친 실상사 작은학교 김민 학생의 소감이다 . 작은학교 언니네 반 5 학년 ( 고등과정 2 학년에 해당 )11 명과 교사 한 분이 ‘ 침묵과 고요한 시간에 나를 본다 ’ 는 주제로 무문관에 참여했다 . 무문관을 연 사연은 이렇다 . 대안학교는 공동체적 어울림을 중시하고 그런 학습을 많이 한다 . 그래서 학생들은 남다르게 이웃을 배려하고 자연 감수성이 돋보인다 . 그런 학생들과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 인간은 사랑과 존중으로 서로 돕고 어울려 살아야 하고 , 다른 한편으로는 ‘ 홀로도 잘 살아야 하는 ’ 존재가 아닌가 ? 누가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더라도 , 누구와 대화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에도 , 누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 심리적 독립을 하고 자족할 수 있는 ‘ 힘 ’ 을 길러야 하지 않는가 ? 그렇게 단단하게 나를 세워야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법이다 .

강원도 홍천 행복공장 감옥수련원.

날을 잡아 애들과 모임을 가졌다 . “ 애들아 ,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어울려 사는 법은 도가 높아요 .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도 잘 살 수 있는 ‘ 힘 ’ 을 길러야 하지 않겠니 ? 그런 길을 찾아보자 .” 그리고 스님들의 무문관 선원을 설명했다 . 무문관은 3 개월 동안 한 방에서 묵언하고 출입하지 않는 선원이다 . 나도 설악산 백담사 무문관을 한 철 지낸 적이 있다 . “ 그럼 실상사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내나요 ?” 취지를 공감한 학생들이 이런저런 궁금증을 쏟아냈다 . “ 말을 하지 않는다 , 혼자 방을 쓰고 친구들과 어울지 않고 혼자 지낸다 . 인터넷 , 휴대전화 , 음향기기 등 모든 통신 문화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 쉽지 ?” “ 스님 말씀은 공감하는데요 , 그럼 밥은 주나요 ?” 헉 ! 관셈보살 ~ 하루 밥 세끼를 주려고 했는데 , 이런 질문이 있어 은근 장난기가 발동했다 . “ 아 !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 , 묵언과 더불어 하루 한 끼만 먹고 수행할까 ” “ 아니오 . 네버 , 네버 , 네버입니다 .” 11 명의 입이 동성으로 발성한다 . 이구동성이 이렇게 작동되다니 , 관셈 보살 ~. 학생들에게 말했다 . 남는 시간은 책 , 산책 , 그림 , 글쓰기 , 명상 , 뭐든 하라고 . 그리고 모든 시간을 온전히 집중하라고 권했다 . 그렇게 작은학교의 역사적인 첫 번째 무문관을 열었다 .

“ 말을 하지 않으며 살았지만 ,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 아니라 고요하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채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

수민이의 소감이다 . 아 , 성공했구나 ,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기뻤다 . 다른 학생들도 대개 이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시대라고 하는데 , 애들은 혼자도 넉넉한 느낌으로 충만했던 것이다 . 애들아 , 고맙구나 .

멈추면 보인다고 했다 .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다 . 자세히 보려면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 . 자세히 보려면 번잡스러운 것들 모두 닫고 고요해야 한다 . 그러면 ‘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 , 내려 갈 때 보인다 .’ 침묵과 고요의 시간 , 무문관은 그걸 체험했다 .

전북 남원 귀정사.

“ 무문관을 하며 잠시였지만 흔들리는 꽃잎 , 반짝이는 돌맹이 , 실상사 , 바람 , 빗물 , 세상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 - 나루 -

“ 봄을 받아들인 벚나무와 자목련을 보고 , 바람과 함께 우는 대숲을 걸으며 , 어디를 보아도 지리산이 보이는 이 곳 실상사에서 무문관을 하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_ - 장하든든 -

“ 이 예쁜 봄날에 고요함을 , 감사함을 , 아름다움을 , 그리고 나 자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 - 이 훤민 -

사는 맛이 진실로 이런 거구나 , 하는 생각이 든다 . 쉽지 않을 수도 있는 무문관을 10 대들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고 온전히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니 , 참 고맙다 . 주는 것을 잘 받아 들이는 것도 보시라 하겠다 . 침묵과 고요 , 단순한 일상에서 살다 보니 애들은 무엇보다도 밥맛이 좋았던 모양이다 . 한결같이 음식 예찬이다 . 너무 배부르고 등 따신 생활을 해서 이거 수행하러 왔다가 괜히 호강만 하고 가는 거 아닌가 , 라고 현수가 배부른 소리를 했다 . 11 명의 이구동성 , “ 공양간 가는 일이 제일 즐거웠어요 ” 평소 너무 많이 먹고 자주 먹는 식습관에서 벗어나 절제하니 밥맛이 다를 수 밖에 없다 . 또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일어난 것 또한 큰 보람이고 기쁨이다 .

“ 무문관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 ‘10 대 때 , 아니 어쩌면 살면서 경험해보기 어려운 것을 내가 해보고 있네 ’ 이런 생각을 하니 무문관이라는 게 저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더라구요 . 실상사 식구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얻어갑니다 . 고맙습니다 . 그리고 밥이 너무 맛있어요 .” 다섯 살 때 보았던 순아가 이렇게 커서 이런 큰 생각을 했으니 그저 흐뭇할 뿐이다 .

사람들은 말한다 . 함께 어울려 살면 외롭지 않다고 ,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어려움과 즐거움을 나누고 사랑하면 행복하다고 . 맞는 말이다 . 그런데 과연 액면 그대로 맞는 말인가 , 하는 생각이 든다 .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도 말하지 않는가 ,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고 . 이 또한 맞는 말이다 .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닐 것이다 . 생명이 운율이 그러할 것이다 . 그래서 홀로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함께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 사람에 따라 ‘ 홀로와 함께 ’ 의 배율이 다를 것이지만 대체로 적절하게 조화로워야 할 것이다 . 누구나 다른 이와 말을 나누고도 싶을 것이고 홀로 조용히 침묵하고 싶을 것이다 . 또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고요히 하고도 싶을 것이고 , 운동과 노동으로 흠뻑 몸을 적시고도 싶을 것이다 . 이런 어울림이 잘 이뤄지는 게 생명의 질서이고 자연이겠다 .

어울림이 중도다 . 모든 생명들이여 ,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 .

글 법인 스님 / 실상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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