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 성소수자 밝혔더니..116일간 정신병원에 가둬"

조해람 기자 2021. 9. 1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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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군인 증언' 담는 시각예술 작가 강영훈

[경향신문]

‘성소수자’ 시각예술 작가 강영훈씨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전시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병영 내 괴롭힘 호소하자 부대선 독방·병원행 선택 강요
남성·계급 구조 폭력 공간…회사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어
‘길벗체’ 제작 참여…성소수자 군인 편지 직접 적으며 치유

“오후 10시,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잡아.”

내무반 불이 꺼지면 성희롱과 괴롭힘이 시작됐다. 선임들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를 잡았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를 간부가 불러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말을 못했어요. 내가 남자답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한다고 자책할 때였죠.” 아버지를 대하듯 편안하게 말해보라고 간부는 말했다. 그는 간부가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믿고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고백했다. 한데 다음날 전 부대가 그 사실을 알았다.

2008년 이등병이던 그는 지금 시각예술 작가로 활동 중인 강영훈씨(36·활동명 제람)다. 군 복무 시절 성소수자임이 알려져 군 정신병원에 116일간 갇힌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부대에서 같은 고통을 겪은 성소수자 군인들의 증언을 편지 형식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프로젝트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에서 전시를 연다는 그를 지난 14일 만났다.

“드라마 <D.P.>가 나오고 군대 내 가혹행위가 조명되지만, 그동안 숱하게 있었는데 말 못할 뿐이었던 거죠.” 강씨의 눈에 군대는 ‘남성성’과 ‘계급’의 수직 구조로 세운 폭력적인 공간이다. 특히 “본인들의 기준과 구조에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성소수자에게 폭력은 고여든다.

커밍아웃 후 더 힘들어하는 그에게 부대는 ‘독방’ 또는 ‘정신병원’이라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1초도 부대에 있기 싫었다”는 강씨는 정신병원행을 택했지만 그곳도 가혹하긴 마찬가지였다. 강제 투약과 철창 면회가 이어졌고,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역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정부와 군을 상대로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사회로 나와 몸담은 스타트업에도, 출판사에도 군대 문화는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작업을 계속할수록 성소수자 자체가 (독립된) 이슈라기보다는 군대식 계급문화와 왜곡된 구조가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인터뷰 내내 그는 ‘목소리’를 강조했다. 시각예술가지만 그의 작품엔 늘 ‘글’이 들어간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를 본떠 폰트 ‘길벗체’를 제작하기도 했다. 처음엔 ‘내게 말을 거는’ 언어였던 예술이 차별에 신음하는 다른 이들을 모으는 ‘등대’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작품 <You come in, We come out-Letters from Asylum>도 편지를 통한 증언이 주를 이룬다. 군형법 92조 6항을 근거로 감금·처벌 등을 당한 군인 6명의 증언을 모았다. 증언자들이 편지를 직접 적는 작업이 일종의 ‘치유’라고 했다.

성소수자 차별을 다룬 강씨의 이번 프로젝트는 2018년 영국의 한 미술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체 이슈를 예술로 다루는 전공수업 발표였다. 한 교수가 “이미 영국에서는 다 지나간 얘기다. 누가 신경쓰겠나(Who cares?)”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현재진행형”이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주저앉을 뻔했다. 그때 맨체스터 출신의 윌이 일어나며 “내가 신경쓴다(I care)”고 말했다. 버밍엄 출신 제이크와 웨일스 출신 베카에 이어 강의실에 있던 학생 20여명이 같은 말을 하며 일어났다. 강씨의 프로젝트는 그날부터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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