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손발 노동
[경향신문]
16년차 검사 정명원은 에세이집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에서 자신을 “리얼 법조인력 시장의 냉혹한 찬바람을 피해 국가의 녹을 먹는 법률 노동자”로 부른다. 그의 프로필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 검사상과 거리가 멀다. “지방대를 나온, 집안적·사회적 아무런 배경이 없는, 체력이 다소 떨어지는, 여성”이다. 줄곧 형사부와 공판부에서 일했다. 지금은 검사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 국민참여재판을 전문으로 맡고 있다.
정 검사의 노동현장에 재벌총수나 정·관계 거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외려 재판 도중 피고인으로부터 “저 미친 아줌마를 감옥에 처넣어라”는 욕설을 듣는다.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했던 피고인은 정작 재판이 열리자 도중에 사라진다. 신참 검사 때는 “특유의 덤벙거림과 두 번 돌아보지 않는 성격으로 번번이 오타를 냈고 부장(검사)은 특유의 꼼꼼함과 수십 번 돌아보는 성격으로 한 톨의 오타까지 잡아냈다. 나의 손모가지에 대한 저주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정 검사는 거악 척결이나 사회정의 구현 같은 거대한 가치가 아니라 민원인들이 건네는 ‘복장 터지게 다정한’ 민원 덕분에 법률 노동자의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안동대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제적’ 노동관을 피력했다. “임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큰 의미가 있겠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 직장에 평생 근무할 생각이 없지 않나.” “사람이 손발로 노동을 하는, 그렇게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전자는 고용불안에 고통받는 수많은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했다. 후자는 육체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특정 국가·지역에 대해 차별적 편견을 드러냈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며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한국의 검사는 2000명이 넘는다. 스스로를 ‘법률 노동자’로 생각하는 검사와 ‘나는 노동자와 구별되는 존재’라 여기는 검사의 차이는 클 것이다. 검사 윤석열이 어느 쪽에 속했을지 짐작이 간다.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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