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미사일 발사 공개 이틀 만에 탄도미사일 발사..계획표대로 국방력 강화 나선 북한
[경향신문]
북한이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발표한 지 이틀 만인 1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동해로 쏜 것은 계획대로 무기체계 고도화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 식’ 시간표대로 군사 기술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발사한 2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북한이 최근 개량 중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소식통은 “지난 3월25일 동해로 발사한 기종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됐다”면서 “하강 단계에서 ‘풀업’(pull-up·활강 및 상승) 기동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앞서 지난 3월 함경남도 함주 일대에서 동해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고도 약 60㎞로, 600㎞가량 비행했다고 발표했다. 합참은 이날 발사된 탄도미사일의 비행거리가 800㎞로 탐지됐다고 밝혔다. 북한이 KN-23의 사거리를 늘리고 정밀도를 높이면서 풀업 기동 기능도 고도화하는 등 지속적 개량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사거리 1만5000㎞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명중률을 높이라고 주문했고, 핵 추진 잠수함과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공식 인정했다. 지난 13일에는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 존재도 공개했다. 국방력 강화 계획에 맞춰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의 시험발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해보려는 정부와 ‘조건 없는 대화’를 내세우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사일 발사 시점도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14일),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 및 한·중 외교장관 회담(15일)에 맞춰 극적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인 의도가 없다”며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 의지를 밝히면서 조건 없는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때까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완벽하게 이행할 것”이라며 협상 진전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한이 순항미사일에 이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위배되는 탄도미사일로 대미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미·일에 이어 한·중 협의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발판을 모색하려던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한·중 외교장관은 이날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한·미가 의지를 밝힌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여러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로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협의를 통해 대화 재개를 모색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탄력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 부장은 이날 오찬 직전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의) 행동이 남북관계나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공감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다만 왕 부장은 “군사적 조치가 한반도 상황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국들이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당분간 국방력 강화 목표 달성을 명분으로 무기 개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북한노동당 창건일(10월10일)을 전후로 한 무력 시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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