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창업, 지력증진 노력 필요하다

2021. 9. 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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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영 ETRI 기술사업화부장

기술창업의 과정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보다 농사에 비유할 때 이해도 쉽고 실제와도 잘 맞는다. 먼저 창업자는 농부, 창업을 하려는 기술은 씨앗에 각각 비유할 수 있다. 창업 후 초기기업 상태는 새싹, 성장 후 회수 또는 지속 성장하는 단계는 수확에 각각 비유할 수 있다.

농사의 목적은 당연히 풍성한 수확, 즉 풍년일 것이다. 풍년은 곡식이 잘 자라고 잘 여물어 평년보다 수확이 많은 해를 말한다. 기술창업의 목적도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좋은 씨앗을 파종한 후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고 여기에 농부의 정성과 고뇌가 가미되고 나면 기술과 연구자가 기업과 경영자로 탈바꿈할 수 있다. 마침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수하거나 탄탄한 기업으로 지속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정부출연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기술창업 성과를 보면 지금이 풍년에 준하는 수확을 거두고 있는 때라 생각한다. 1992년 이후 지난해까지 설립된 연구원 창업과 연구소기업 총 818개 중 30%에 달하는 222개가 최근 5년 동안에 설립되었다. 평년보다 수확이 많은 해가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 또한 기술창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창업에 대한 성과도 신설법인 수, 정부의 창업지원 예산, 벤처투자액 등 다양한 통계가 말해준다.

기술창업 성과에서 필자가 근무하는 ETRI의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최근 5년 동안 정부출연연구원이 설립한 전체 창업기업의 33%인 74개 사를 연구원이 설립했다. 또한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연구소기업 4개 사 중 3개 사를 배출했다. 이는 양(量)뿐만 아니라 질(質)에서도 탁월한 성과다.

수년 동안 창업이라는 농지를 개간하고 경작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축적하여 구성한 ETRI만의 창업플랫폼에서 그 비법을 찾아볼 수 있다. 창업플랫폼은 창업과정 내에서 상호작용하는 모든 환경을 체계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제도나 지원정책 등도 포함된다. 연구원은 오래전부터 연구진의 직접 창업을 장려하기 위한 인사와 지원 제도 기반을 만들어 왔다. 연구진의 기업가정신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과 새로운 창업방식을 타 기관보다 먼저 시도한 셈이다.

농업에 종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일정한 조건 없이는 풍성한 수확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조건이 바로 토양의 힘이다. 수확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토양의 힘을 증진하기 위한 객토와 깊이갈이 등 농경지 개량을 위한 활동이 필수적이다. '지력 증진' 또는 '땅심 돋우기'이다.

기술창업도 현재의 제도와 방식, 그리고 지원정책으로 무한정 우수한 창업기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지금의 수확을 자축하다가는 현재의 창업생태계와 성과가 자칫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만 한다.

창업의 지력은 씨앗이 쉽게 발아할 수 있는 조건과 성장을 위한 풍부한 영양분에서 나온다. 도전을 저해하는 제도적 제한의 과감한 개량, 창업과 성장에 필요한 지원의 확대 등이 지력증진 활동이다.

지력 증진과 함께 농사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주된 방식은 한 연구기관에서 한 명의 연구자가 하나의 기술을 가지고 창업을 하는 것이다. 규모와 범위에 한계가 있게 된다. 다수의 기술, 다수의 연구자, 그리고 다수의 연구기관이 힘을 합치면서 역할을 분담하는 출연연 협동창업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시도가 필요하다.

연구가 끝나고 창업을 고려하는 기존 방식도 유효하지만,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연구를 하는 역발상도 효과적일 수 있다. 지력 증진과 창업 방식의 변화는 '유니콘' 기업의 창출과 같이 출연연이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술창업은 기업이란 실체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시장에 연결하기 위한 연구자의 직접적 도전과 실천에 목적이 있다. 연구자의 도전이 뿌리를 내리고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력을 증진하는 것은 정부와 창업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참여자들의 역할이다. 다음 단계의 기술창업 붐을 기대하기에 앞서 창업생태계의 힘을 돋우기 위한 지력 증진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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