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누가 아편·몰핀을 허했는가

2021. 9. 1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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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최근 마약 유통 및 투약 사범들이 무더기로 검거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마약 밀매 규모는 커지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다. 일제가 비공식적으로 아편을 풀면서 많은 중독자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의 마약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1920년 3월 30일자 동아일보에 '아편에 중독된 강경(江景)'이란 기사가 보인다. "충청남도 강경이란 곳은 조선 3대 시장 중의 하나로 치는 큰 도회지(都會地)라. 그런데 그 지방에는 작년 여름에 괴질이 유행할 때부터 아편을 먹고 아편주사를 맞으면 괴질은 물론 기타 무슨 병에도 걸리지 아니한다는 일종의 미신적 풍설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한 사람 두 사람씩 아편을 빨기 시작하던 바, 요사이에 이르러서는 그 수가 점차로 늘어나서 지금 그 지방에는 아편을 먹고, 모루히네(morphine; 몰핀) 주사를 맞는 자가 자못 많아져서 지금은 모루히네 중독자가 거의 50명에 가깝고, 그 해독은 실로 막대해 가는 모양이라고 한다."

1921년 4월 1일자 매일신보도 마약 문제를 짚고 있다. "경북 경산군 자인읍은 경부선 경산역에서 약 20리 되는 지방인데, 이곳에는 종래 상당한 재산가도 많아서 생활상태가 자못 풍족하던 터이나, 모루히네를 주사하는 자가 생겨 이로 인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또 징역까지 산 자가 적지 아니하나, 종시(終是; 끝내) 끊이지 않고 현재까지 중독된 자가 40~50명이나 된다고 말하더라."

일제는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인들에게 투약할 목적으로 아편을 대대적으로 생산했다. 그 전초기지는 조선이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재고를 해소하기 위해 일제는 조선 땅에 아편을 풀었다. 동시에 의료용 몰핀까지 시중에 유입되면서 많은 중독자가 생겨났다.

몰핀 중독은 악독한 의사에 의해 더욱 확산됐다. 1920년 9월 6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악덕 의사의 간계, 멸망에 빈(瀕; 임박한)한 전라남도'란 제목의 기사다. "요사이 전라남도 지방에는 모루히네 주사를 맞아 일시의 쾌락을 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데, 그중에는 앞길에 희망이 양양한 젊은 청년이 많이 있다 함이 더욱이 세상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한다. 함평은 중독자 수가 가장 많은 모양이며 다음에는 능주군으로 심지어 밭 매는 여자들까지라도 모루히네 주사를 맞지 아니한 사람이 드물게 되었음으로, (중략) 한편으로 괴악(怪惡)한 의사들이 사회의 해독과 도덕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개인의 욕심을 만족하기 위하여 한 대에 3~4전의 돈을 받고 놓아주다시피 한 뒤에는 그 주사에 중독이 되어 주사를 맞지 아니하고는 견디지 못할 정도까지 만들어 놓은 후 주사 한 대에 30~40전씩의 적지 않은 돈을 받아 많은 재산을 모았다는 의사가 없지 않은 모양이다."

마약은 극단적 선택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1921년 5월 29일자 매일신보는 가련한 기생의 음독자살을 다루고 있다. "대구부에 사는 김복향(金福香)이라는 당년 23세의 기생은, 그 모(母)가 항상 돈을 벌으라고 조석(朝夕)으로 들볶아 대서 남모르게 눈물을 많이 흘리고, 항상 염세증(厭世症)으로 이 세상을 비관으로 지내던 차, 지난 25일 밤 11시쯤 되어 모루히네를 먹고 그 이튿날 아침 9시 반쯤 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고 한다." 유명한 시인 김소월도 아편을 먹고 32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살로 추정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중독자들은 마약을 구하기 위해 절도 등 범죄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1921년 4월 17일자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경성부 연지동 김경원(金景元·35)은 모루히네 중독자로서 주사를 맞기 위하여 항상 절도를 해 오던 바, 청진동 276번지 김윤근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양화(洋靴; 구두) 두 켤레를 절도한 외에 여섯 번이나 수십원을 절취한 일이 발각되어 종로경찰서에서 검거, 취조한 후 검사국으로 보내었더라."

물론 그 시대에도 마약 중독을 막기 위한 많은 노력은 있었다. "학우회(學友會) 순회 강연단 일행은 지난 21일 전주에 도착하여 오후 8시부터 전북공회당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는데, 최창익(崔昌益)군이 단에 올라 '지금 조선 청년에게 중독자가 속출하는 현상을 통론(通論)하되, 이에 대한 경찰 당국의 취체(取締)가 불철저함은 심히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인 즉, 아무쪼록 사회의 일반의 제재로써 이 같은 악풍을 근본적으로 박멸함이 필요하다'고 가장 힘 있는 어조로써 부르짖었다." (1921.7.25. 매일신보)

하지만 마약 중독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다. 1927년 5월 5일자 신한민보의 '전 조선에 아편범(犯)이 산재(散在)'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아편 먹는 자가 전 조선에 산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대부분 중산계급, 부호, 귀족들이라고 했다. 1930년 5월 21일자 매일신보는 "전라북도 관내의 모루히네 중독자는 총수가 780여명에 달하여 조선에서 가장 많았고, 모루히네 주사의 동기(動機)는 색정(色情) 관계자가 289명으로 가장 많았고, 모루히네 주사료로 10여만원을 탕진한 백만장자가 있다 한다"고 전한다.

매일신보에 의하면 1930년 말 현재 조선에는 5000여명의 등록된 중독자와 만여명의 미등록 중독자들이 있었다. '시루에 물 붓기' 식으로 모든 마약대책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매일신보는 전한다. 마약의 사전적인 뜻은 강한 진정 작용과 마취 작용을 지니고 있으며 습관성이 있어 오래 사용하면 중독이 되는 물질이다. 하지만 사람이 물질에만 중독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인격살인(人格殺人)성 비방과 자신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 역시 중독성이 있을 것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막말'이 마약중독 만큼이나 위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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