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계엄을 해제하라

한겨레 입력 2021. 9. 15. 19:26 수정 2021. 9. 1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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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도흠|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는 경우에 한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갖는다. 대신 집회의 참여자는 집시법과 그 시행령을 따라야 하며, 그러는 한 집회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경우는 전시와 계엄 상태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집회의 자유가 있는가. 촛불의 함성이 솟구치던 서울 광화문 광장은 을씨년스럽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는 방역을 빌미로 거의 모든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심지어 한두 사람이 단식농성하는 현장까지도 경찰이 주변에 차단벽을 치며 통제하기도 했다. 필자의 제안으로 민교협, 한국작가회의, 정의평화불교연대 등의 지식인과 문인들이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촉구 동조단식을 합법적으로 행할 때 벌어진 일이다. 유사한 일이 많았기에 활동가들은 작년 초반부터 ‘코로나 계엄’이라는 말을 해왔고 이번 민주노총 사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항쟁으로 권력을 얻었음에도 지난 4년 내내 촛불의 명령인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외면하였다. 적폐의 핵심인 재벌과 미국에는 저자세로 일관하여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만들고 서민과 노동자를 생존 위기에 놓이게 하였으며, 정치, 경제, 사법, 언론, 조세, 교육, 부동산 등 사회개혁을 전혀 수행하지 않거나 개악하고 있다. ‘촛불배반 정권’으로 표현해도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만 노동존중을 외쳤을 뿐 집권 내내 그 반대의 행보를 취하였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하여, 불평등은 코로나 이전인 2018년에 이미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86%를 차지할 정도로 박근혜 정권 말기(47.76%)보다 더 악화하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공부문에서도 선언에 그쳤다. 각종 산입 범위를 확대시키는 바람에 물가까지 고려하면, 최저임금은 실질적으로 감소하였다. 탄력근로제를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용자 책임을 최소화한 채 누더기법으로 통과시켜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죽는 이들의 비율은 거의 같다. 노동법 개혁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완전 비준을 계속 미루고 있다.

노동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2020년 제조업 일자리 1만개당 로봇 대체율이 868대로 세계 2위에 이를 정도로”(국제로봇연맹, 2021.1.) 일자리는 급속히 줄어들고, 정보통신(IT) 강국과 인공지능(AI) 강국의 미명 아래 플랫폼 노동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더해지며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하루를 버텨내기조차 힘든데, 사회안전망은 느슨해지고 노동 조건은 악화하고 노동자의 권리는 위축되었다. 극악한 상황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언론이나 정당은 괴멸 수준인데, 최후 수단인 노동 거부도 쉽지 않다.

노동자들은 참다 참다 지난 7월3일에 도심에 모여 ‘중대재해 근절!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저지! 최저임금 인상! 노동법 전면개정!’을 외쳤다. 집회 관련 법과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 평화적으로 수행했고, 집회와 관련해서는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절박한 소리를 들어주기는커녕, 전면적인 노동 탄압에 나섰다. 급기야 지난 9월2일 새벽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연행했다. 삼성의 위세에 눌려 사법부가 형량을 줄이고 또 줄인 것으로도 모자라 이재용을 가석방까지 시켜주더니 아무런 죄도 없는 노동운동의 수장은 구속시켜, 현 정부가 반노동 친재벌 정권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생명에 관련된 것이기에 방역이 집회의 자유보다 우선한다. 하지만, 여러 외신이 보도한 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옥외 감염률은 0.1% 정도로 독감의 감염률보다 낮다.(아일랜드의 경우 23만2164건 중 262건) 국내든 국외든, 그 어떤 독재자가 독감 감염을 빌미로 집회를 금지하고 그 주도자를 구속한 예가 있는가. 정부는 이제 그만 코로나 계엄을 해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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