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삶에서도 부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래

정혁준 2021. 9. 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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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 개막
오르페우스 신화 현대적 재해석
미국 뺀 국가 중 한국서 첫 공연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사진. 에스앤코 제공

‘21세기판 그리스 신화’는 희극일까? 비극일까?

지난 7일 서울 역삼동 엘지(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선을 보인 지 3개월 만에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미국 이외 지역 공연은 이번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처음이라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1일 공연을 보기 전 결말을 떠올려봤다. 신화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와 비극으로 끝낼지, 반대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희극으로 마무리할지 궁금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사진. 에스앤코 제공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독사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으로 가 멋진 리라 연주를 펼쳐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승낙을 얻어낸다. 단 하나의 조건은 마지막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하지만 마지막 순간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고, 아내는 저승으로 떨어진다. 이 비극의 신화는 수많은 음악·미술·문학·영화 소재로 변주돼왔다.

뮤지컬은 두 또래 여성이 의기투합해 제작했다. 극작·작곡·작사를 맡은 가수 아나이스 미첼은 자신이 낸 앨범 <하데스타운>을 뮤지컬로 만들었고, 연출가 레이철 채브킨은 이야기를 다듬으며 연출을 맡았다.

무대는 2개의 극단적인 세계로 갈린다. 개인의 존재가 살아 있으며 가난할지언정 자유롭게 살아가는 지상의 재즈바, 개인의 존재를 지우고 노동만 하며 살아가는 지하의 하데스타운이 그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음악 재능은 뛰어나지만 생활력은 떨어지는 재즈바의 웨이터로, 에우리디케는 가난과 추위를 피하려고 스스로 하데스를 찾아가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데스는 부당 계약으로 노동자를 억압하는 악덕 광산 운영자로,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자유를 만끽하는 인물로 나온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사진. 에스앤코 제공

에우리디케는 하데스타운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대신, 인간다운 삶은 포기해야만 했다. 이곳을 다스리는 하데스는 “못 가진 자들은 우리 것을 탐하지. 가난이 우리의 적이지. 적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벽을 세운다”는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벽을 쌓아,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는 현대 자본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다.

이처럼 <하데스타운>은 오래된 신화 속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얘기하면서 빈부격차, 양극화 등 극단적으로 갈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결말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뮤지컬은 마지막에서 되돌이표처럼 첫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며 에우리디케가 살아 돌아온 듯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와 슬픈 노래는 이렇게 흘러가지.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비극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지만, 결국은 비극인 셈이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사진. 에스앤코 제공

이처럼 비극으로 끝내는 건, 사랑에 얽힌 신화를 현대 자본주의에 투영한 현실과 더불어 보여주기 위해서다. 지금 세상을 희극이라고 하기엔 우리 주위에 자본·성·이념·인종으로 갈려 벌어지는 슬픈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극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맞서야 할까? 레이철 채브킨은 국내 제작사와 한 인터뷰에서 “저에게 있어 <하데스타운>은 언제나 공동체의식을 의미했다. 연인이나 친구가 바로 우리 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뮤지컬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처럼 삶과 사회가 비극인 걸 알면서도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끊임없이 사랑하고 연대하라는 의미다.

<하데스타운>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성스루 뮤지컬’이다. 바이올린·첼로·트롬본·콘트라베이스·피아노·기타가 무대에 자리 잡아 흥겨운 라이브 연주를 들려준다. 노래는 아메리칸 포크와 블루스, 재즈가 어우러진 선율로 울려 퍼진다. 내년 2월27일까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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