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곳을 '크레바스'라 부른다 [두 바퀴엔 절벽 같은]
[경향신문]
2019년 4월 2호선 신촌역에서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당한 장향숙씨는 서울교통공사(공사)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정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아 차별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패소했다.
1심 법원은 ‘승강장 안전발판 설치’가 법이 정한 ‘정당한 편의’에 들어가지 않아 차별이 아니라고 했다. 공사가 제공하는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지하철 승하차 전 역사에 전화해 이동식 안전발판 설치를 요청하는 서비스)’, ‘원스톱 케어 서비스(교통약자가 역에 하차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까지 전담인력이 동행하는 서비스)’, ‘또타지하철 어플리케이션 서비스(스마트폰 앱으로 휠체어 승하차가 가능한 승강장 위치 안내)’ 등도 차별이 아니라는 판단에 힘을 실었다.
이동식 안전발판, 원스톱 케어 서비스, 또타지하철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13일 오후 2시 전윤선 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를 만나 해당 서비스들을 이용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2시13분. 2호선 시청역 내선 4-4 승강장 앞에서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전화를 걸어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요청했다. 시청역에서 출발한다는 사실과, 4-4에서 승차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2시21분에 도착한 열차에 탑승했다. 이 승강장의 연단간격은 8㎝(공사 자료).
2시22분. 열차가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했지만 4-4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격은 9.5㎝. 속도를 내면 내릴 수 있었지만, 단차(차량과 승강장의 높이 차이)가 커 포기했다. 전 대표는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안되나보다’ 마음을 접게 된다”고 말했다.
2시25분. 2호선 을지로3가역 4-4에서 하차했다. 3호선으로 이동해 경복궁역에 전화를 걸어 이동식 안전발판을 요청했다. 2시34분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다른 승객들이 내리고, 역무원 2명이 반으로 접힌 안전발판을 펼쳐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펼쳤다. 판자 형태로 생긴 안전발판은 간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단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부족해보였다. 지하철-승강장 높이가 다를 경우 휠체어가 안전발판을 밟을 때 널뛰기처럼 발판이 튀어올랐다. 승객이 내리고, 발판을 펴고, 휠체어가 내리고, 발판을 접고, 다른 승객들이 탔다. 이 과정이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20~30초간 작전처럼 진행됐다.
2시45분 3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려 5호선으로 이동했다.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했다. 리프트를 작동한 역무원에게 ‘안전발판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승강장이 있다”고 답변한 후 떠났다.
3시31분 5호선 신길역 8-1에서 내렸다. 안전발판을 들고 나온 역무원은 “저희 역에 오신 게 처음이신가요? 위쪽까지 안내해드릴게요”라며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동행했다. 이날 전 대표가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신청한 6곳 중 별도 요청 없이 동행 서비스를 제공한 유일한 역이었다.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가 지난 6월28~30일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서울 지하철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 160명 중 62명(38.8%)이 교통약자 이동도우미 서비스에 대해 ‘불만족(매우 불만족+불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매우 만족+만족)’ 응답은 32명(20%)이었다. 불만족 이유는 ‘역과 전화가 안된다(25.6%)’, ‘안전발판이나 서비스 인력이 없다(23.8%)’, ‘불친절하다(6.2%)’ 순이었다.
■탈 땐 고를 수 있지만 내릴 땐 아니란다
1심 재판부는 “피고(공사)는 ‘또타지하철’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전동휠체어가 안전하게 승하차 할 수 있는 승강장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타지하철은 ‘전동휠체어 안전승하차’ 메뉴에서 열차-승강장 간격이 좁은 위치 220곳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교통약자에게 ‘간격 좁은 승강장’ 정보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중 대부분이 휠체어 전용칸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에는 각 열차마다 4곳씩(호선별로 차이가 있음) 휠체어 전용칸이 정해져 있다. 공사가 제공하는 간격 좁은 승강장 220곳 중 휠체어 전용칸은 39곳(17.7%)이었다. 또타지하철 앱으로 좁은 간격 승강장을 골라타면 5번 중 4번은 휠체어 전용칸이 없는 열차에 타게 된다. 다른 승객들이 오가는 통로에 ‘장애물’처럼 있어야 한다는 이유 탓에 전시는 휠체어 전용칸이 없는 곳을 꺼린다. “널찍한 데 두고 왜 여길 타!” 전씨가 얼굴도 못 본 승객에게 뒷통수를 맞으며 들었던 말이다.
휠체어 전용칸 승강장 2190곳(1~8호선) 중 390곳(17.8%)의 연단간격이 10㎝보다 넓다. 이 중 286곳은 고무발판도 없다. 들쑥날쑥한 휠체어 전용칸 승강장 간격은 교통약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탈 곳은 골라탈 수 있지만, 내릴 곳은 골라내릴 수 없다는 것, 그들이 느끼는 현실적 공포다. 3호선 일원역 상선 4-4에서 탈 때는 2.5㎝, 3호선 충무로 상선 4-4에서 내릴 때는 18㎝다. 4호선 숙대입구역 상선 1-4는 간격이 5㎝지만,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1-4는 21㎝다.
‘역에 전화해 이동식 안전발판 요청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1심 재판부의 논리였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공사가)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해당 지하철역에 연락해 담당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등 그 서비스의 내용과 이용 현황 등에 비춰볼 때,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휠체어 사용자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승하차할 수 있는 정당한 편의로서의 승강장이 제공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간격·단차로 인해) 휠체어 사용자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승하차하기 어려운 승강장의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차별행위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타고 내릴 때마다 전화를 해서 무언가를 요청해야한다면, 이를 ‘동등한 승하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2심은 공사가 교통약자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할 ‘과도한 부담’,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다고 봤다. 수년 전부터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돼온 ‘자동안전발판’을 설치하지 못할 구조적 사유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2016년 당시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교통공사 전신)는 2020년까지 27개 역에 419개 자동식 안전발판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자동안전발판이 설치된 역은 2곳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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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국·김유진·이수민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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