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민이 '영끌' 지원한 소부장 기업들 '죽음의 계곡' 잘 건너게 하는 게 목표"

조승한 기자 2021. 9.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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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년 맞은 이조원 나노종합기술원장
이조원 나노종합기술원 원장은 “제품 개발이 활발히 진행중인 만큼 올해말쯤에는 국내 반도체 생산라인에 접목할만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소부장 사태가 끝나더라도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창업 기업들이 생존에 가장 큰 고비를 맞는 기간)'을 잘 건너서 연구 성과를 잘 사업으로 만들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착실히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나노종합기술원 제공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국내 산업과 학계엔 비상이 걸렸다. 한국이 대일 의존도가 높았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고 국산화와 해외 도입선 다변화와 같은 대응이 시작됐다. 이 가운데 하나가 지름 12인치 웨이퍼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술을 검증할 테스트베트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12인치 웨이퍼를 이용해 만드는 반도체는 대량 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주력 생산품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 장비를 개발하는 중소기업들은 성능을 시험할 방법이나 장비가 없어 12인치 반도체 기술의 국산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극자외선(EUV) 감광제(PR·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이 한국 산업을 노려 규제 대상이 올린 대표적인 소재들이다. 감광제는 빛에 반응해 특성이 바뀌는 화학물질인데 반도체의 미세한 회로를 그릴 때 사용된다. 

올해 3월 나노종합기술원에 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가 들어서면서 마침내 감광제 국산화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조원 나노종기원장은 "감광제(PR) 국산화에 나선 동진쎄미켐, SK머티리얼즈, 영창케미컬, DCT머티리얼 등을 비롯한 30여 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이 시설과 장비를 이용해 소부장 국산화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7일 대전 유성구 나노종기원에서 만난 이 원장은 “제품 개발이 활발히 진행중인 만큼 올해말쯤에는 국내 반도체 생산라인에 접목할만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나노종기원은 소부장 사태가 끝나더라도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창업 기업들이 생존에 가장 큰 고비를 맞는 기간)'을 잘 건너서 연구 성과를 잘 사업으로 만들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착실히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1층청정실 ArF 이머전 스캐너 앞에서 나노종합기술원 연구원이 자체 제작한 40nm 패턴웨이퍼를 선보이고 있다. 나노종합기술원 제공

이 원장은 국내 나노기술 개발의 1세대 연구자다. 그는 일본의 수출규제 약 두 달 뒤인 2019년 9월 16일 나노종기원 원장에 취임한 뒤 줄곧 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에만 매달렸다. 테스트베드는 올해 3월 처음 문을 열었다. 당초 올 연말을 목표로 하던 구축 완료 시점을 9개월이나 앞당겨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계 일각에선 공공기관에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대신 연구비로 지원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구입에만 1000억 원 이상이 드는 ‘불화아르곤(ArF) 이머전 스캐너’와 같은 핵심 장비 10대를 예산 450억원으로 구축할 수 있겠냐는 의심어린 우려도 나왔다.

다행히 삼성전자가 남아도는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면서 큰 문제가 해결됐다. 이 원장도 삼성전자를 수차례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을 설득했고 결국 장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장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장비 제조사인 ASML에 개선 작업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ASML본사를 대신에 장비 수리를 담당하는 국내 지사는 한 번도 개조를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원장은 “안해본 것 뿐이지 내용은 다 아는 것인 만큼 결단을 내려 요청했다”면서 "ASML코리아에 근무하는 한국 엔지니어들의 우수성을 믿었다"고 말했다. 장비는 성공적으로 개량됐고 지난해 7월 나노종기원에 도입돼 올 3월부터 정상적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나노종기원은 국내에서 나노 연구를 지원하고 인프라 시설을 제공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8인치 테스트베드에 이어 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까지 구축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나노종기원에 구축된 연구 인프라는 대학과 기업, 연구소 실험실에선 개발됐지만 여러 이유로 상용화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 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선 매번 세계 최초라는 연구가 쏟아지고 있지만 딱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딱 거기까지지요. 연구실에서 나온 성과를 이어달리기를 통해 양산 직전까지 지원하는 역할이 나노종기원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이 원장이 생각하는 종기원의 운영 철학이다. 

나노종기원을 통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기업들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열영상장비 개발기업인 트루윈은 나노종기원과 함께 개발한 적외선 열영상 센서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해 지난해에만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나노종기원의 반도체 실험 장비들을 활용해 반도체 부문에서 메모리반도체 공정 소재, 공정진단 광센서이 상용화되기도 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진단키트와 디지털 유전자증폭(PCR) 플랫폼 상용화가 나노종기원의 도움을 받아 개발에 성공했다.  

이 원장은 “나노종기원은 2005년 문을 연 이후 경험을 쌓은 인력과 장비가 충분한 반면 대부분 중소기업은 여전히 이런 장비가 없고 전문가가 부족하다"며 “중소기업이 나노종기원과 함께 최종 제품까지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올해 시작한만큼 성과가 더욱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노종합기술원 연구원이 기술원 2층 12인치테스트베드에서 측정및증착 장비를 운영하고 있다. 나노종합기술원 제공

이 원장은 '소부장 사태'를 계기로 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와 같은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지만 여전히 장비 부분은 한국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사실상 해외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재료의 국산화율이 50%라면 장비 국산화율은 20%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특히 장비 개발은 더 많은 공간과 예산이 필요해 이보다 적은 투자로 상대적으로 성과를 내기 용이한 소재에 밀린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장비 분야 기업들과 간담회를 해보니 성능의 95%는 따라가는데 5%가 부족해 밀린다고 한다”며 “소부장 대응 예산이 특별예산으로 편성돼 쉽게 늘리기 어려워 나노종기원 차원에서도 지원이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 원장은 소부장 분야의 인재 양성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나노종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나노기술전문인력 양성 및 일자리 지원사업’을 진행해 학생 80명을 교육하고 이중 62명이 반도체 대기업과 나노관련 기업에 취업했다. 내년에는 교육 대상을 100명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양질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다행히도 올해 교육생 선발 경쟁률은 22대 1로 나타나 양질의 지원자를 선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원장은 "나노종기원은 반도체 기업이 보유한 장비들을 똑같이 갖고 있어 대학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이 가능하다”면서도 "공간이 부족하고 인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인력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이 원장은 "남은 임기 동안 정체된 반도체 산업에 돌파구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그러면서  돌파구 중 하나로 헬스케어를 제시했다. 반도체를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하면 민감도가 늘어나고 작게 만들 수 있어 가격을 낮추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반도체와 나노메디컬디바이스를 융합하면 부가가치가 큰 의료산업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무어의 법칙'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온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기회의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당장은 코로나19로 해외 활동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해외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나노기술을 시장에 판매하고 싶은 외국 벤처기업들을 지원하는 법인을 별도로 설립해 제품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해외와 학술 교류, 공동 마케팅을 통해 연구지원 서비스를 해외에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조원 원장이 7일 대전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집무실에서 나노종기원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노종합기술원 제공

| 이조원 나노종기원장은 

△1952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한양대 금속공학과 입학 △1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금속과학 석사·박사 △1992~2010년 삼성종합기술원 실장/PM △2000~2010년 과학기술부 21세기프런티어사업단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 △2010~2019년 한양대 나노융합과학과 교수 △2019년 9월~현재 나노종합기술원 원장 △세계 최초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CFT 개발해 기술이전 및 양산 성공

용어설명 | 나노종합기술원은

나노기술 연구와 개발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구축해 나노기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KAIST 부설기관으로 나노공정 서비스, 나노기술 전문인력 양성, 연구성과 사업화, 소재부품장비 테스트베드 역할 등을 수행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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